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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ON 다온 Nov 04. 2023

지금의 상태를 잘 기억해야겠다

다시 우울의 바다에 간다고 해도 돌아와야 하니까


 나는 어릴 적부터 내 건강에 대해 예민한 편이었다. 엄마가 내 건강에 유독 신경을 더 써준 것이 자연스럽게 내가 나의 건강을 살필 수 있는 예민함을 만들어 준 것 같다. 유치원을 다니면서 체력 보강용 한약을 먹었고,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성인이 되어서도 잊을만하면 나는 체력 보강용 한약을 지어먹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쉽게 지치고, 회복하는 속도도 늦었다. 내가 아팠던 날들을 천천히 살펴보면 내가 나의 한계치를 넘어서서 이런, 저런 활동을 하다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몸이 너 좀 쉬어야 해’, 라든가 나 이제 쉬고 싶은데.’라며 발악을 하는 상황을 직면하고 휴식시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들어가며 나의 몸 상태에 대해 더욱 예민해졌다. 


 하지만 예민했던 것과 다르게 나는 아프다는 말을 잘 안 했다. 통증에 대한 참을성이 어릴 적부터 또래보다 좋았다. 그래서 오죽하면 엄마가 내가 중학생 때 급하게 마취도 없이 피부를 절개하는 작은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크게 울면서 아프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짜 아픈가 보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게 피부를 절개해서 아팠던 것이 아니라 절개해야 됐던 그 병(?) 때문에 아팠던 것이다. 칼을 댔다는 건 나중에 진정되고 알았다. 그 정도로 나는 내가 못 참을 정도가 됐었을 때 아프다고 표현하는 사람이라서 스스로는 힘들고,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만 더’라면서 버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타인은 내가 어느 정도 버틴 것인지 모르니 내 제대로 된 상태를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편안한 날들을 보내면서 나는 하루, 하루가 소중해졌다. 처음 몇 주는 이런 말끔한 상태를 언제 느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랜만이라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정말 신기했던 것은 피곤함을 잘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정신이 맑다는 느낌을 꽤 오랜만에 받았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하늘을 올려보는 행동을 다시 하게 되었다. 맑으면 맑은 대로 기분이 좋고, 구름이 많으면 또 그것대로 예뻐서 하늘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스마트 폰 갤러리가 하늘 사진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날을 다시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여겨지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내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 부분 중 하나는 내가 누군가의 시선과 행동, 말투에 더 이상 과하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특히 남들의 행동과 말투를 신경 쓰면서 ‘나 때문인가?’라는 생각에 빠지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행동과 말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스스로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정도의 선을 인정하고 욕심부리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도, 다른 사람한테도 더 이상 과한 감정 소비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나의 좋은 상태는 계속 이어졌다.      


 내가 정확히 어떤 명칭으로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먹고 있는 약들로 내게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약들이 나의 좋은 상태를 유지해주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는 날도 있었다. 약이 줄고 잠이 못 잤던 것을 보면 나는 약에 의해 잘 수 있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병원에 다니고 2개월이 조금 못 됐을 때부터 약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줄어들었음에도 나는 안정적인 날들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이 내게는 꽤 좋은 신호로 다가왔다. 스스로 상태를 판단할 수 있는 비교 할 수 있는 모습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다시 피곤함이 이어져도, 우울의 바다에 가게 되어도 전보다 빨리 알아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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