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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ON 다온 Nov 01. 2023

딱히 뭘 하지 않아도 괜찮아.

무의미한 하루 보내기


 9개월 가까이 쉴 틈 없는 날을 보냈던 내가 제일 먼저 잊어버린 것 중 하나는 ‘쉬는 방법’이었다. 주말에 한참 일을 하던 시기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은 오랜만에 평일에 연차를 쓰고 쉬는 날이었는데 운동이든, 집안일이든 해야 할 것들을 다 해놓고 ‘잠깐 쉬자’라는 생각으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는데 고개를 움직여 집안을 돌아보면서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할 거 다 했는데 이제 뭐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왔다.      


 우울감이 깊어져 병원을 처음 갔을 때만 해도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없었고, 무엇보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의욕이 없었다. 그때 제일 많이 했던 생각이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였다. 그냥 멍하니 침대에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다가 잠이 들면 자고, 그러다 깨면 다시 천창만 보아도 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좀 더 의욕적이 되어봤자 바다를 보면서 또는 숲 속에 들어가 혼자 있고 싶다는 정도였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뚜렷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시간을 보내는 것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뒤를 돌아보면 때로는 그저 잠자리에서 뒹굴 거리면서 스마트 폰으로 만화도 보고 영상도 보고 게임도 하면서 어쩌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는데 그것들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내게 영상은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매번 같은 영상을 틀어놓아도 상관없었다. 그것이 재미있어했던 프로그램은 맞지만 내가 같은 영상을 계속 돌려보는 것은 단순히 조용한 것이 싫어서였다. 하지만 그것도 싫었던 때가 내가 병원을 처음 갔던 그 시기였다. 소리가 필요해서 틀어놓았던 영상이었다고 해도 재미있는 부분에서는 똑같이 웃곤 했는데 그 시기에는 그것도 할 수 없었다. 화면 속 재미있던 장면을 보고 있으면 나의 우울한 상태가 더욱더 느껴졌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는 날을 만들었다. 쉬는 날이 다가오면 나는 매번 주말에 해야 할 것들을 대략적으로 정해놓았는데 그것이 아무리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고 해도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말이 되었을 때 나의 상태에 따르는 날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취미가 그저 취미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쉬는 날은 그저 ‘쉼’만 있어도 된다는 생각을 새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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