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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ON 다온 Nov 18. 2023

종합심리검사보고서, 그 속에 내가 있다

기질적으로 불안도와 우울도가 높은 편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처음 찾았을 때 원장님이 종합심리검사를 권유하셨다. 그리고 고민하다가 검사를 예약했고, 그 검사가 지난달(10월)에 있었다. 1시간 30분가량 검사가 진행됐다. 심리검사 하면 흔히 알고 있는 나무, 집, 가족 그리기부터 지능검사도 있었다. 종합심리검사는 내 기질, 성격뿐 아니라 나의 언어이해능력, 지각추론능력, 주의력 등 여러 지능 검사까지 포함되어 있다. 여러 검사를 하고 간단한 면담까지 하고 나서야 검사가 끝났다.      


 결과를 들을 수 있는 건 3주가 지나고 나서였다. 그동안 나는 약을 꾸준히 챙겨 먹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아무 일 없이 잘 지냈다. 그리고 결과를 드디어 듣게 됐다. 검사 결과로 나는 우울증과 성인 ADHD는 아니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러나 주의 집중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결과가 나왔고, 기질적으로 불안 수준과 우울도가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정서적으로 억제되고 방어적인 경향이 있고, 주변의 시선과 평가를 신경 쓰고 정적인 모습을 내보이려고 신중하게 행동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내가 원하는 정도의 관심과 애정을 얻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내 속에 있는 어린아이는 그렇게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자신을 책망하고, 억제하면서 살아왔다. 집에 돌아와 천천히 다시 결과지를 읽어 가는데 끝으로 갈수록 마음이 저릿했다. 지금은 다행히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지만 예전의 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의집중력이 낮게 나온 것은 원장님도 의아하게 생각하셨다. 다른 수치들에 비해 현저히 낮게 나왔고, 그 정도는 아닐 것이라면서 검사하는 날 긴장했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면서도 평소에 집중이 잘 안 되는 편인지 물어보셨다. 보고 싶은 책을 봐도 10분 이상 집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일을 하다가도 머릿속에 뭔가 떠오르면 그걸 생각하다가 작은 실수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을 원장님이 집중력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먹어보겠냐고 물으셨다. 그런데 나는 특별히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으면 먹지 않아도 되는지 물었고, 약은 먹지 않고 좀 더 살펴보기로 했고, 계속 먹던 약은 다시 한번 줄어서 저녁 약만 남았다. 초반에 약만 4-5 종류를 먹었는데 이제는 한 종류의 약만 남았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만 해도 내가 과연 이 약들을 줄일 수 있을까, 내가 이 약들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고, 사실 앞이 짐작되지 않아서 깜깜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다시 내가 만들어진 느낌이라서 나도 내 모습이 새롭게 느껴지는 날이 많다.

      

 내향적이고, 수동-의존적 성향이 있는 나는 여전히 남들 시선과 평가에 신경을 쓰고 행동하는 면이 없지는 않지만 예전보다 덜 신경 쓰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과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나는 약물치료도 인지-행동치료도 계속하면서 지내야 하겠지만 그게 예전처럼 무겁고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충분히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어쩌면 제목처럼 우울과 헤어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 우울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는 그런 내가 아니라 스스로 그 우울마저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날이 추워졌습니다, 글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더워서 힘들었는데 치료를 받고 글을 쓰면서 더위가 가시고 시원해지더니, 쌀쌀해지고, 추워졌네요. 3개월 동안 이런저런 개인적인 일이 많았습니다. 사는 이유를 모르는 날도 있고, 행복해서 좋은데 그러다 불안한 순간도 있었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슬픈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들을 겪으면서 다시 한번 크게 깨달은 것은 제가 저보다 타인의 시선과 행동, 의견에 많이 맞추며 지내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의 의견보다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에 맞춰서, 그들이 이렇게 해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삶인데 부모님이 좋아하실 것 같은 모습, 친구가 좋아할 것 같은 모습, 상사가 좋아할 것 같은 모습 등 그런 모습들로 저의 삶을 만들어 왔던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있고 싫어하는 것이 있음에도 강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그래, 그렇게 해.’라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저를 미워했던 날도 있고, 그런 저를 안쓰러워했던 날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저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혼자가 될 것 같아서 불안했습니다.

      

요즘에는 비교적 예전보다 원하는 모습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실 누군가에게, 특히 친한 사람들에게 ‘나 우울해, 살고 싶지 않아.’라면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누구나 힘들고 원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도 가끔은 ‘나 강해, 나 괜찮아.’라는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거든요. 나약한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가까울수록 더욱요. 하지만 이번에 주저앉으면서 제가 저의 사람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냥 ‘해결방법’이 아니라 그들의 ‘위로’, ‘공감’, ‘응원’이 필요했습니다. 웃자고 하는 말로 ‘인생은 혼자지.’라고는 하지만 저는 함께하면서도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을 제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사람이라 제게 크게 뭘 해주지 않아도 ‘내가 너의 옆에 있어.’라는 느낌을 충분히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다 말해버린 거죠. 덕분에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좋아진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저는 요즘 매일이 소중하고, 행복합니다. 조금만 덜 신중해 볼까 합니다. 그들의 평가가 제 삶을 완전히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니까요. 


3개월 동안 저의 글에 가져주신 관심 매우 감사합니다, 보여주시는 관심 표현에 매우 행복했어요.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아가면서 제가 정말 관심을 많이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거든요.

비록 크게 내색하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지만 보내주시는 그 관심 하나, 하나가 매우 소중합니다:)

저의 우울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이 이제 더욱 추워질 날만 남았습니다. 

건강 잘 챙기셔서 즐거운 겨울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들오들 추워진 겨울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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