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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ON 다온 Jan 06. 2024

2. 셀프 염색, 어렵지 않아요

내가 염색을 계속하는 이유

 성인이 되고 즐겼던 것 중 하나는 염색이었다. 요즘은 학생들도 두발자유화가 염색까지 허용된다고 알고 있는데 내가 학교를 다닐 때 두발자유화는 그저 머리 길이 정도였던지라 귀밑 몇 센티의 기준이 없어진 것이지 파마, 염색은 허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머리카락의 길이가 길다고 한들 그것을 풀고 다니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그런 학생시절을 지나 수능이 끝나고 제일 먼저 한 것은 귀를 뚫는 것이었고, 다음은 머리색을 바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뭐 거의 검은 머리에 색을 입힌다고 그것이 얼마나 보이겠냐마는 그 시절에는 그것도 좋았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며 머리색을 바꾸는 일이 늘어났다. 긴 머리의 안 쪽만 탈색을 하기도 하고, 애쉬 카키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나마 차분해 보이는 색을 골라서 염색했다. 당시에는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었고, 절에 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으니 차분한 색을 많이 선택했던 것 같다. 그리고 2년 전쯤 처음으로 전체 탈색을 하고 갈색 빛을 벗어나 금빛의 머리색을 갖게 되었다. 머리색이 달라지자 스스로 보는 이미지가 달라졌다. 좀 더 세련되어 보이고, 개성도 있어 보이고 그랬다. 서른이 다되어가고 있는 시기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기도 했다. 그렇게 탈색을 하고 다음 뿌리 탈색을 해야 될 시기에 보랏빛으로 염색했다. 염색 직후에는 푸른색이었다가 색이 빠지면서 보랏빛과 잿빛이 함께 도는 색이 꽤 마음에 들었다. 당시에는 머리 길이도 짧았기 때문에 더욱 그 머리가 좋았던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것은 머리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미용실을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유지비용까지 할 수 없던 나는 집에서 혼자 파란색 염색약으로 셀프 염색을 한 번하고 결국은 어둡게 다시 머리색을 바꾸었다. 유지하기에는 역시 어두운 색이 편하다. 


 자취를 하면서 내 생활은 더욱 버거워졌다.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고 먹고. 자고. 일만 하는데도 무섭게 카드 결제금액은 쌓여만 갔다. 그런 생활을 계속 이어가다 결국에 나는 주 7일 일하는 것을 선택했다. 쉬는 날 없이 일하다가 개인적인 일로 주 6일로 근무일수를 바꾸어서 일했다. 그렇게 일을 하며 나는 정신적으로 점점 지쳐갔고,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계속 찾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던 지금까지의 기분전환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방법을 찾다가 결국 다시 한번 탈색을 했다. 밝아진 머리를 보자 기분이 함께 밝아졌다. 머리가 자라서 뿌리가 검게 될 때 즈음 한, 두 번 더 탈색을 해서 밝은 색을 유지하다가 밝은 색의 염색약을 사서 머리색을 바꾸었다. 분홍빛, 초록빛이 돌던 내 머리색. 머리가 조금씩 자라 검은색의 비중이 점점 늘어 가면 나는 그것이 보기 싫었다. 커트와 셀프 염색으로 나는 기분을 잠깐이나마 바꾸어나갔다. 그렇게 바꾸는 것을 몇 번이고 했지만 그것이 한동안 멈췄을 때는 내가 정신적으로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면서였다. 커트도, 염색도 하지 않았다. 머리가 자라면서 덥수룩해지고, 검은색의 비중이 늘어나서 스스로 보기에 지저분해 보이고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미용실을 가거나 염색약을 살 생각을 하면 저절로 늘어나는 카드결제금액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 쓰는 돈이 아까웠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나에게 쓰는 돈은 대부분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었음에도 나를 꾸미는 데 쓰는 돈이 헛돈 쓰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게 되면서 더욱 무너졌다. 


 정신의학과를 다니기 시작하고, 약을 먹고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으며 점점 나아지기 시작하자 나는 다시 나의 외적인 모습을 챙기기 시작했다. 비교적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옷과 신발은 사지 못했지만 좀 더 나은 피부를 위해 화장품을 샀고, 신경 쓰지 못했던 머리를 정리했다. 다시 한번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에 쇼트커트 스타일을 벗어나 머리를 다듬고, 염색약을 사서 머리색을 정리했다. 그 후로 머리색이 빠져서 흐릿해질 때면 조금씩 진한 색으로 다시 덮어나가기 시작했다. 더는 머리색으로 스트레스로 풀지 않을 결심을 하면서 말이다. 


 내가 스트레스가 극에 다다라서 버티기 힘들어질 때면 하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염색이고, 하나는 피어싱을 늘리는 것이다. 그 두 가지 중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염색을 많이 했던 것이고, 피어싱은 셀 수 없이 참고 참다가 질러버리는 정말 마지막 수단인 것이다. 내가 염색하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이유는 머리색이 나의 이미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간편한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조용하다, 착하다 등 모범생이라고 보이는 이미지를 너무도 싫어했는데 염색을 하는 것으로 그런 이미지를 조금은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해서 꾸준히 염색을 해왔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내 기분전환 방법 중 하나가 되었고, 어느 순간에는 그것이 내가 나를 아끼는 방법 중 하나가 되었다. 머리카락은 탈색과 염색을 반복해서 상해갈지는 모르지만 내가 나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는 항목이 된 것이다. 


 오늘 집을 나오기 전에 언니가 사놓은 염색약으로 머리색을 바꾸고 나왔다. 어두운 갈색을 띠고 있던 부분은 검은색에 가까워졌고, 밝은 갈색이었던 부분은 짙은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바뀐 머리를 말리고, 정리하고 나오니 뭔가 새로워진 기분이었다. 달라진 것은 머리색 하나인데 그 덕분에 오늘 하루도 꽤나 즐거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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