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바리스타 일을 시작한 지 6년, 글을 본격적으로 써보겠다고 한 것도 6년이 되었다. 도서관을 다니고 있던 그 해, 나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았다. 내가 더는 도서관에서 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사서공무원도 아닌 계약직 사서로서 일하기에는 환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앞날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차에 갖게 된 생각이 전업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크기만 큰 꿈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부터 글을 쓰지 않으면 앞으로도 나는 나를 알리는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작가’라는 소리는 하지도, 듣지도 못하고 ‘그때 했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좀 더 진지한 마음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전업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 현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리스타였다. 흔하게 성인이 되고 하는 아르바이트 중에 카페 아르바이트가 있지만 나는 성인이 되고 내가 다니던 절에서 주말에 아이들을 가르치며 용돈을 벌었고, 대학 졸업 후에도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계약직으로 넘어갔으니 성인이 되고 보통 많이 한다는 아르바이트들은 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커피를 좋아해서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던 것이다. 아, 그러니까 마시는 걸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는 커피를 그냥 아무거나 마시는 걸 좋아했지 맛이 다름을 느낀다던가, 원두에 관심이 있다든가 그러지는 않았다. 바리스타라는 직종이 그저 궁금했고,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학원을 다니고 자격증을 따고 나면 쉽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응원을 받지는 못했다. 누군가는 작가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하면 더 깊이 있지 않겠느냐라고도 했고, 누군가는 사서로 일을 더 해서 돈을 모아둔 다음에 하면 안 되겠느냐라고도 했고, 누군가는 내성적이고, 숫기 없는 내 모습을 말하며 네가 바리스타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많은 걱정을 받았었다. 유일하게 한 명만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해 보는 것에 낫지 않겠느냐며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었다. 그 말에 더욱 마음을 굳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지금까지의 나의 날들이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사소한 것들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나가고 있지만 정작 큰 것, 나의 현실적인 미래에 대한 것들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없었던 날들이었다. 남들이 다 가니까 들어갔던 인문계고등학교, 남들이 다 가서 입학한 대학교, 부모님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들어간 도서관. 살아가는데 사소한 것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나의 전반적인 생계에 관해서는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또는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을 상황을 만들기 위해 지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보자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내 이름이 박힌 책을 한 권 내고, 카페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하면서 모든 날이 좋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나를 알리는데 너무나도 서툰 사람이었고, 자격증이 있다고 실무능력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인정이 매우 필요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1-2년 동안은 스스로를 바리스타라거나 작가라고 말하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누군가가 내게 뭐 하냐고 물어보면 ‘카페서 일해요.’라고 말했고 글 쓰는 것은 굳이 먼저 말하지 않았다. 내 능력이 무언가 거창해 보이는 이름으로 불리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평일 2시간을 일하던 파트타이머에서 평일 저녁 2시간과 주말 하루를 일하는 파트타이머로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나는 점점 카페 일에 적응해 나갔다. 그런 시간을 몇 달 보내고 사내카페로 이직했다. 커피를 하면서 번듯하게 돈을 벌기 시작했다. 비록 몇 달은 적응하느라 몸도 정신도 편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적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글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내가 책을 썼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냥 무작정 써보자고 생각했다. 이렇게 쓰다 보면 언젠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과 가슴에 생기는 감정을 최대한 예쁘게 다듬어서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글을 업로드했다. 어떤 글은 반응이 좋았고, 어떤 글은 반응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런 반응에도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하지만 어느새 그런 반응에 연연하지 않고 쓰게 되었다. 그렇게 되고 나서는 더 글 쓰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힘들지 않은 것도 아니고, 후회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이 직업으로 바뀌어 내 모든 날들과 함께 하게 되었을 때 더욱 힘들어지고, 후회하게 된다. ‘취미로만 갖고 있을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 생계가 걸리게 되고, 더 열심히 해야 되니까.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내가 만약 그때 작가가 되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고 말이다. 무엇이든 쓰고는 있었을 것 같다. 나는 그 쓰는 것으로 내 마음을 달랬던 사람이니. 하지만 어느 순간에 놓아버렸을 것 같다. 지난 어느 순간에는 글 쓰는 것이 재미있지도 않았고, 무엇을 써야 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힘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떳떳하게 말한다.
저는 바리스타이며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