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초, 낯선 곳에서의 2박 3일이 시작되었다.
더위보다는 긴장감이 더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러다 보니 자꾸 화장실을 가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화장실이 실내에 가까이 있었다.
상황을 도피하기 위해서인지 정말로 속이 안좋은건지 자꾸 배에서 신호가 오는것처럼 느꼈다. 하지만 화장실에 가면 아프던 배가 감쪽같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모든 건 느낌이다.
모든 건 감정이다.
모든 건 생각이다.
지금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진실이 있었을까?
그리고 그때 바닥에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입술을 앞으로 쭉 내민 얼굴이 나타났다.
내가 저 녀석을 발견한걸까? 저 녀석이 나를 발견한걸까?
우리는 서로 놀란 눈동자를 하고 서로 바라보았다.
"오! 들켰다!"
나는 말을 건다.
"너는 사라지고 있는거니? 나타나고 있는거니?"
"....."
그렇지. 너는 참 말을 아끼는구나!
놀란 상태 그대로 그 감정을 감추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채 놀란 감정 그대로 날 계속 바라보고 있다.
실제 표정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 무생물의 것에서 얼굴을 떠올리는 현상을 파레이돌리아라고 한다고 한다. 이것은 현상일뿐이지 병은 아니다. 단지 우리 뇌가 착각할 뿐이다. 우리 뇌는 참으로 단순하다. 인간은 눈 2개 코하나 입 하나 이걸 기본값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구름을 보고, 깡통을 보고, 바닥을 보고, 못자국을 보고, 벽을 보며 얼굴을 떠올린다.
이건 불분명하고 불특정한 소리, 그림, 전경, 물체를 보고 특정한 의미를 추출해내려는 심리현상이다.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인간'만이 하는 행위이지 않을까?
게다가 그 얼굴로 인식하며 의미를 찾기에 우리는 그 무생물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를 보며 감정을 느끼기까지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사물을 통해 무엇을 보고 싶은걸까? 무슨 의미를 찾고 싶은것일까?
나의 감정을 투영하여 나를 위로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작년 2023년 8월 나는 왜 널 발견했을까? 나의 숨겨진 감정과 마음이 너를 발견하게 한 걸까?
나의 마음을 찾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내가 만난 사물의 얼굴을 통해서.
사물의 얼굴이 나의 마음과 심리, 감정을 담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그 마음을 사물의 얼굴을 통해 마치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낯설게 바라보는 것처럼.
나는 나의 마음을 알려고 했던가?
내가 생각할 때 나는 목표지향적 인간이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이루어내가 위한 과정이다. 그 과정이 모여 목표가 이루어지면 성공적인 인간이 된다고 생각하는 기본 값이 나에게 탑재되어 있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일이 끝나면 번아웃, 일이 없으면 우울감이 날 사로잡았다.
이때 나를 툭 건드리는 누군가의 사소한 언어, 행동, 표정이 나를 무너뜨렸다.
결국 마음을 단단하게 세우는 연습이 되지 않은 것이다.
단지 나를 지키기 위해 '회피, 무시, 무관심'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기에 누군가의 얼굴을 만난다는 것이 나에겐 힘든 일이다.
그래서일까? 오히여 사물의 얼굴을 만날 때 반갑다. 너는 어쩌다 나타났니? 들킨거니, 나타난거니? 라고 묻고 싶다. 지금 나에게 딱 필요한 사물의 얼굴, 나에겐 당신의 얼굴!
이젠 너의 얼굴을 통해 나의 마음이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