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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Aug 17. 2022

벌써 일년

엄마가 없이 지낸지 벌써 일년이 되었다.

엄마가 없어도 또 우리는 살아졌다.


지난 주에 언니들과 점심을 먹다가 문득 큰언니가,

"벌써 일년이 되었네. 엄마없이 산 지도..." 라며

엄마가 없다는 것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했다.

"어디엔가 엄마가 그냥 있을 거 같애. 그냥 요새는 왜 전화가 없지? 이런 기분이야. "

큰언니의 덤덤한 말에 작은 언니도,

"나는 매일 전화를 해대다가 전화를 걸 데가 없으니 날마다 이상해."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엄마가 없이 어떻게 살 지 하던 순간들도 그냥 그렇게 또 살아졌다.

산 사람은 다 살게 되어 있다는 옛말이 이렇게도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떠난 이에게만 서글플 뿐이다.


살아 지는 순간순간에서 떠난 이가 떠오른다. 마트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명란젓을 볼 때마다, 먼지가 잔득 낀 선풍기를 닦을 때에도, 고장난 수도꼭지를 어찌 고칠까 고민을 하는 때마저도, 문득 넘겨다 본 창문밖에 등산복을 차려입고 거리를 지나는 꼿꼿한 노인네의 뒷모습에도 엄마가 스쳐지나가며 삶의 순간순간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함께 살아가다 보니, 일년만에 돌아 온 엄마의 기일에서야, 엄마가 없었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와서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든다.

지금이라도 카톡을 하면 실없는 뽀글머리 아줌마의 이모티콘을 날려줄 것 같은데.



그런 엄마에게 절을 한다. 두 번 절한다.

두 번째의 절은 정말로 이제는 내곁에는 엄마가 없다는 확인사살(엄마가 평소에 잘 쓰던 표현이다. 나는 '확인사살'... 과 같은 단호한 표현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가끔씩 엄마의 단호한 말투가 그리울 때가 있다.) 같아서 한참을 더 업드려서 이 이상한 현실감을 곱씹는다.

눈물이 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상할 뿐이다. 엄마가 없는 현실감이. 엄마가 없는 이 공간이. 

그저 공기처럼 머물며 유리박스 안에, 엄마의 옛날사진 속에 그렇게 머무를 것을 믿으며 곁에 있는 듯이 느끼며 살아가는 내 일상이 그저 이상한 현실감일 뿐이다.


그러다 가끔은 그저 몹시도 궁금하다. 어디서 무얼하고 어떻게 지내고 계실지.

산 자는 그 누구도 수가 없는 사후 세계의 존재를 단 한번도 믿은 적은 없었지만, 유일하게 우리 엄마만은 어디선가 무언가를 하며 지내고 있을 것 같다. 비가 오면 따뜻한 믹스커피를 머그잔 한 가득 마시며 화분을 들여다보고 장날에는 시장을 맴돌며 무얼 사볼까 고민할테지.

그런 사소한 일상을 누리는 형태가 아니라면 어디선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속에서, 내 공간의 공기를 가득 채우면서 미처 닿지 못하는 잔소리를 왱왱거리며 맴돌고 있겠지.


알 수 없는 당신의 세계가 이토록 궁금한 것은 그곳에서의 당신의 안녕때문입니다.

그곳에서의 당신의 공기는 행복하고 따뜻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엄마,

우리는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어.

생각보다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느라 살짝 엄마가 서운할 정도로.

작은언니가 좀 아팠지만 잘 견디고 착하게 치료를 잘 받아서 엄청 좋아졌고 문서방이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으니 걱정 말으어. 알지?

오빠는 생각보다 씩씩하게 혼자서 밥도 잘 해먹고 집도 얼마나 모던하고 깔끔하게 정리를 잘 해놓고 사는지 몰라.

큰언니는 삼남매들이 다 착하게 잘 자라나니까 최근에서야 자기의 삶을 좀 누리려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아. 

차쌤이 올 해는 바닷가 촌 학교를 벗어나서 시내 중학교로 발령을 받아서 도시교사가 되었어. 곧 남친이랑 결혼한다고 할 것 같애. 야무지게 지 단도리를 잘해. 특히나 차쌤이 갱년기 큰언니를 잘 챙기는 것같아서 보기 좋아. 울 집 딸들도 딱, 차쌤처럼만 바르게 자라면 좋겠어.

아, 엄마의 첫 손녀, 차쌤이 외할머니가 맹날 당신이 눈이 엄청 높았다고 하시더니, 외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니 진짜 외할머니 눈이 높았구나, 인정한다면서 외할아버지 인물을 칭찬하는 바람에 다같이 웃었어.


울집 큰 땡지는 할매말 안 듣고 무조건 서울로 학교를 간다는데, 나는 그냥 응원할 생각이야.

서울이라고 머 별거있겠어. 사람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딸래미 혼자 서울보낸다고 너무 걱정하지말아. 요즘은 작정하면 두 세시간이면 가는 서울이야. 내가 20살 때는 엄두가 안 날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아.

여차하면 아빠나 내가 따라갈 지도 몰라.ㅋ


중학교에 간 작은 땡지는 엄마말마따나 언니보다 더 독한 구석이 있는 거 같애. 공부욕심도 더 있고. 최신폰을 받겠다고 작정을 하고 공부를 하더니 반에서 1등했어. 할매가 알았음 용돈을 듬뿍 찔러 줬을텐데, 대신에 이모랑 삼촌이 번갈아서 넉넉히 찔러줬어. 큰 지야는 그냥 공부하는 게 적성이 맞아서 아무생각없이 공부를 하는 거 같은데, 작은 땡지는 솔직히 공부가 맞아보이지는 않는데 그냥 욕심으로 하는 거 같애. 언제까지 그 욕심을 계속 부릴 지는 모르겠다. 엄마가 하던 말이 떠오르네.

"나중에 작은 땡지가 더 잘하려고 용를 쓸끼다. 마음만큼 잘 안 되면 승깔도 부릴끼고. 난재 쟈를 잘 보다듬어 줘야 된다이."

아, 할매가 기겁할 일이 또 하나있다. 작은 지가 175cm를 어 부렸다. 진짜 모델을 시키야 되나. 되긋어?


아... 혁군은 여전히  말 안 들어, 안 들어. 요새는 중2병 말기증상까지 보여서 엄마 말마따나 매가 약인듯 해.  잡아볼려고 하는데 쉬이 잡혀 주지를 않네. 그냥 그저 착하게만 자라길 바라야 할 듯. 착하게 사는 게 가장 힘든 일이려나 모르겠다.

또, 멀대같은 이서방도 매일처럼 자기자리 잘 지키고 있고, 너무 지키고 있어서 늘 피곤한 양반이지. 오늘 연차쓰라하고 엄마한테 데리고 갈까 고민도 해봤는데 이서방도 그러라고 하길 은근히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던데, 괜히 오바같기도 하고 그냥 이서방은 늘처럼 지자리에서 바쁜 척하고 사는 모습을 뵈주는 것이 더 어울릴 거 같아서 말았어.


이모는 살이 조금 붙었고 보기좋더라.

가끔씩 엄마 생각이 날 때, 이모한테 연락을 해볼까 하다가 관두곤 해. 괜히 이모도 나도 더 엄마생각나고 쓸쓸해질 거 같기도 하고, 또 어색하기도 하고. 작은언니한테 이모소식을 전해 듣고 있어.

오늘 이모보니까 좋더라. 엄마의 숨결 비슷한 느낌을 오랜만에 느껴봐서 좋았어. 이모가 건강하고 또 행복하길 함께 빌자.


그리고, 나는... 나는 계속 바빴어.

요즘에 이상하게도 자꾸 수업이 늘어서 바빴어.

일이 많으니까 허전할 새도 없었어.

엄마가 맨날 일 좀 줄이라고 잔소리했는데, 참 말도 안 듣지? 근데 그게 내 맘대로 되지가 않더라고.

그리고 또, 가끔씩... 이렇게 아주 자잘하고 시시콜콜한 내 일상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게 너무 시시콜콜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 할 때, 그럴 때 엄마 생각이 나. 우리 둘이 아무렇게나 들어누워서 시시콜콜 실없는 이야기를 떠들어 대던 그 순간들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이제서야 깨달았어.


시시콜콜하기로는 엄마 다음인 이서방도 요즘은 마음이 좀 바빠. 우리 시어머님도 좀 아프시거든.

요즘 울 시엄니가 편찮으셔서 거동도 불편하고 깡 마른 모습을 보니 희안하게 눈물이 확 나오려고 하드라. 엄마가 아플 때는 그렇게 씩씩하더니 말이야.

울 시엄니를 보니 엄마 생각이 확 나서 이제서야 마음 편하게 슬퍼할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참 난처했어. 막상 엄마가 그렇게 깡마르고 움직이지도 못할 때는 이 모든 일이 다 내가 잘못한 거 같아서 눈물도 죄책감같이 느껴지면서 그렇게 단단해지더니.

우리 시어머님의 깡마른 등어리를 보고 있으니 그냥 너무 가엷기만한 거야. 내가 시어머님한테는 잘못한 게 별로 없어서 오롯이 가엷기만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드니까, 엄마한테 또 미안해서 눈물이 날라 하드라. 참 이래 저래 나쁘지.


지난 가을은 정신없이 지냈고

겨울에는 코로나로 숨어 지냈고

봄에는 작은언니가 아파서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어.


이렇게 또 가을, 겨울, 봄, 여름.

계절이 지나감을 차츰 느끼면서 살아 볼래.


지지난 주 휴가에는 아이들과 바닷가를 다녀왔어.

생각해보니, 아이들과 여행을 간 지가 1년 훌쩍 넘은 거 같애. 너무 안 나갔더라. 

나도 엄마인데 딸의 마음을 기다려 준 내 아이들이 고맙고 쨘해서 오랜만에 나서보았는데,

해운대 바닷가에서, 용궁사 입구에서, 엄마랑 언니랑 아이들이랑 같이 놀러 온 게 떠올랐어. 우리 참 여기저기 많이도 다녔더라. 

한참을 어디 놀러나서는 일이 그리 신이 나지가 않드라고. 코로나때문에 안 다녀서 그런가 싶었더니, 여기 저기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는 일이 신이 나지가 않았나 봐.

아이들과 해변열차를 타고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으려니 탁 트인 바다가 좋으면서도 엄마랑 왔을 때는 이런 게 없었는데 싶었어.


작은언니 치료가 끝나면 겨울쯤에는 우리 독수리 사남매끼리 여행을 가자고 해볼까 싶어.

내년쯤에는 예전처럼 작은언니랑 아이들이랑 비행기도 탈 수 있겠지?

"다닐 수 있을 때, 실컷 여행도 다니고 살아라" 하던 엄마 말이 떠오르네. 엄마도 그러고 있는 거지?


다음 주 엄마 생일이던데, 수업도 많고 바쁜 날이라 엄마한테 가보지는 못 할 거 같아.

마음속으로만 세상에 엄마가 보내짐에,

내 언니 오빠를 곁에 남겨주심에,

또 나를 존재하게 해주심에

깊이 감사드릴께. 감사합니다. 살아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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