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혜주 Oct 30. 2022

《숨결이 바람될 때》

- 폴 칼라니티


엄마가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그 방 안에서 나는 상상해 본다.

점점 나약해져가는 엄마의 숨결들이 하나씩 하나씩 엄마의 몸 속에서 빠져 나와 거대한 세상의 어딘가에 한 숨, 한 숨이 차곡차곡 모인다.

나약한 숨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한 줄기의 바람이 되어 주변을 맴돌다가 다시 이 방 안으로 불어와 엄마의 몸 속으로 돌아돌아 들어 가면 엄마는 살 게 될까.


주인을 잃은 바람들이 불어 불어 떠돌아 다니다가 다시 나약해진 누군가에게로 불어 들어가 그를 살리는 숨결이 될까.

그도 아니면 그 바람들이 살랑살랑 내곁을,  엄마를 그리워하는 이들 곁을 맴돌고 맴돌다가 엄마 냄새 한 숨을 내려 놓으며 그리워 하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갈까.


세상에  수많은 사라져 가는 사람들이 내뱉는 나약한 숨결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바람이 되어 휘몰아 치는 상상을 한다. 

어느새 그 작은 숨결들은 바람이 되고 큰 소용돌이가 되어 세상을 향해 아직 내가 여기 있다고, 바람이 되어 떠돌아 다니는 숨결들로 곁을 지키고 있다고, 나를 잊지 말아달라고 외친다.

바람이 불 때마다 마음 한 켠이 스산해 지는 이유는 그 누군가 사라져가는 이들의 간절한 외침때문일까.




이런 상상들에 꼽혀 있을 즈음에 만난 책이다. 알라딘 서점에서 《숨결이 바람될 때》 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이런 나의 상상을 누군가가 펼쳐 놓았을 기대에 차서 겉표지나 머릿말을 펼쳐 보지도 않은 채, 책을 골라 담았다. 그냥 내 책 같았다.


36살의 신경외과 의사의 마지막 이야기는 담담하고도 당당했다. 너무 용감하고도 따뜻해서 더 슬펐다. 마치 평범한 일상의 한 단면처럼 담담하게 소중한 마지막의 순간을 기록했다.

엄마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내가 하고 싶었던 것도 기록이었던 만큼 저자의 이 기록이 마치 내것같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환자가 원하는 건 의사가 숨기는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찾아야 하는 실존적 진정성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나는 화나지도 겁먹지도 않았다. 정말로 그랬다. 그것은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처럼, 객관적 사실이었다.


그의 마지막 이야기를 단 한 자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서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씹어서 음미하면서 읽어본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필사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문장 하나, 하나를 허투로 읽어 넘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문장 하나, 하나가 암세포와 싸우는 저자에게는 마지막 순간들의 절박하고도 소중한 기록이었을 것이다.

활자 하나, 하나가 저자가 내뱉은 마지막 숨결이 되어 세상에 소용돌이치다가 내게로 날아 들어와 나의 상처받은 공기를 치유하고 다시 돌아 나가는 기분이었다.


분홍색 공책을 한 권 사고 새 연필을 한 자루 깎았다. 저자의 마지막 숨결이 바람되어 세상을 떠돌아 다니는 순간, 순간 나는 오롯이 기억하고 담아 놓으리라. 내가 받은 위로에 대한 사명감같은 것이 생긴다.

36세의 촉망받는 의사이건, 79세의 평범한 사남매의 노모이건, 그 누구라도  마지막 순간은 오롯이 기억되어져야 하고 활자의 숨결이든 다른 여러가지 방법이든 소중하게 남겨지는 영광을 누려야만 할 것이다.




그토록 열망하던 의사로써의 삶의 마지막을 깨달은 말기암 환자 저자가 담담하게 동료와 인사를 건네고 병원을 나와 자동차에 열쇠를 꽂고 시동을 걸어 비극적인 오늘을 살아 내는 순간에서 나는 깊은 곳으로부터 울컥울컥 감정이 북받쳐 올라와 도무지 책장을 더 넘길 수가 없었다.


당신에게 닥친 일들은 비극적이만 당신은 비극이 아니다. - 루시 폴라니티


남은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되어 삶의 시간이 여유로운 이나, 이제 자신의 시간이 단 며칠밖에 남지 않음을 스스로 온 몸으로 느낄 만큼 시간이 절박한 그 누구라도, 일상은 살아가야 한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기 위해 오늘도 자동차에 열쇠꼽고 시동을 걸어야만 한다. 

 또한, 내게 주어진 오늘을 살아야 한다.

오늘공기가 이 슬픈 숨결로 가득채워지지 않도록 잠시 책장을 덮었다.


한 숨을 고르는데 몇 주가 지났다.

그의 마지막을 도무지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작년에 암으로 떠나간 엄마때문에 감정이입이 되는 것일까. 내가 보고 느낀 의사들과는 다르게 온전한 환자의 입장이 되어 환자의 마음으로 남은 삶을 써내려의사이자 환자인 저자의 모습에 감정이입이 되는 것일까. 저자의 탁월한 문장들에 매료된 덕분일까.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책의 감정에 완전히 몰입이 된다.

도저히 한숨에 후루륵 읽어낼 수가 없다.

곱씹고 곱씹으면서 아껴 아껴 읽고 싶다.



어제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루시 폴라니티의 덧붙이는 에서는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넘쳐났다.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을 함께 하며 지켜보는 것. 그것만큼 안타깝고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그녀 역시 참으로 단단하고도 따뜻한 사람임이 느껴진다.

평생의 반려자를 잃는 아픔속에서도 이 책을 완성해주어서 나처럼 가족을,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치유해 주어서 감사하다.


나는 책은 책이고, 내 삶은 내 삶인 사람이었다.

고로, 책을 읽어서 내 지식의 폭이나 앎의 욕구 충족은 가능할 지 몰라도 내 마음의 위로나 온전한  치유받음을 기대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이런 내 마음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그야말로 '인생책'이 될 것 같다.

줄 쳐 둔 수많은 문장들을 필사를 하면서 다시 되뇌이고 곱씹으며 또 위로를 받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벌써 일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