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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억 Jul 19. 2022

옅어지고, 무너지고, 사라지고

#6

택시를 타고 마포대교를 건널 때 보이는 무수한 불빛이 이제는 눈엣가시처럼 느껴진다. 분명 감탄을 자아냈던 광경이었는데, 이제는 아니게 됐다. 차창 밖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는 게 일상이 됐다. 되도록 밖을 보기보단 안을 보고, 안에서는 눈을 감는 일이 잦아졌다. 눈을 감으면 미련이 없어진다. 그 공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없어진 미련마저 옅어질 정도로 감정은 메말라가고 있다. 이미 바닥을 드러내 쩍쩍 갈라지고 있는데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척하는 걸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기대도 없어지고 있다. 삶도, 관계도, 미래도, 모든 게 허무해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껍데기만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그래도 괜찮다고 되뇐다.


사고는 극단을 향해 달려간다. 언젠가 고등학교 은사님이 "인간은 죽음을 향해 질주한다"라고 말했는데, 지금 내 사고가 딱 그렇다. 상황과 사람에 지치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맺고 끊음의 순간이 되레 손바닥 뒤집듯 쉬워진다. 어쩔 수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없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토마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되어버리고야 만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다수 남들처럼 국내 대학으로 진학하지 않았다. 일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는데, 내 의지는 아니었다. 이마저도 한 학기를 채 마치지 못하고 자퇴했다. 집안 사정이 갑자기 나빠진 것이 원인이었다. 부모님께서 직접 일본에 와 "공부를 마쳐도 좋지만, 뒤로는 담보해줄 수 있는 게 없다"라고 했다. 학비 지원해주고 나면 땡전 한 푼 남는 게 없다는 소리였다. 후쿠오카 해변에서 온 가족이 껴안고 울었던 기억이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남은 6개월 동안 수력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제대로 준비하지는 못 했다. 처음 담배를 입에 물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결국 지방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했다. 별 볼 일 없는 인생이 시작됐다고 여겨졌다. 나 자신을 극단까지 내모는 비관주의적 사고관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싹트지 않았을까 싶다.


간신히 여기까지 온 인생이 다시 갈림길에 섰다. 내가 나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가 아니라 어떻게 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밤도 깊어지고 있다. 눈을 감아 본다. 눈을 감으면 미련이 없어진다. 그 공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이 세상 유일한 나만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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