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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억 Jul 28. 2022

출근, 그리고 퇴근

#8

어수룩한 새벽녘이 내뿜는 쾌쾌한 냄새에 취한다. 어제 따라놓은 식은 커피 한잔같이 피우는 담배는 맛도 분위기도 일품이다. 눈을 뜨고 눈을 감는 하루 동안 유일한 나만의 시간이다. 그뿐이다. 전쟁터로 끌려나가기 전 최후의 만찬을 즐기는 병사처럼, 오롯이 순간순간에 집중할 뿐이다. 그 시간이 길지 않음에 안타까워한다.


모래주머니라도 달린 듯 터벅이며 걷는 발걸음에는 누군가 다독여줬으면 하는 속마음이 숨어 있다. 속마음이 고개를 내밀려고 하는 찰나, 사람을 마주치기 시작한다. 사람은 사람들이 되고, 사람들은 무리가 되고, 내가 마주해야 하는 벽이 되고, 넘어서야 하는 장애물이 되고, 처리해야 하는 일이 되고, 끝내 지치고야 마는 이유가 된다. 나를 알지 못하기에 나를 알아달라고 말할 수 없고, 나를 알기에 나를 알아달라고 말할 수 없다.


때가 되면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속이 쓰려서 밥을 먹으러 간다. 커피는 되도록 줄여야 한다는데, 어느 순간 벌컥이고 있는 건 커피다. 오늘은 샷을 추가해서인지 더 쌉싸름한 게 맛에 깊이가 더해졌다. 한 숨 돌리고, 하늘도 한 번 바라본다. 하늘을 뿌옇게 만들던 먼지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문뜩 깨닫게 된다. 별 감흥은 없다.


오후부터는 마감에 치이는 일상이다. 간신히 원고를 작성해 올려놓으면 누군가는 뜯어고치기 시작한다. 나만의 입맛에 갖은 조미료가 곁들여진 글은 지면 위에 살포시 얹힌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조금 더 알아봤더라면, 조금 더 검토해봤더라면. 어차피 내일이면 마감에 쫓겨 잊힐 고민을 이내 시작하고야 만다.


걸어서 오든, 자가용을 타고 오든, 버스를 타고 오든, 퇴근길에 마주치는 이들은 한결같이 나보다 더 행복해 보인다. 그래서 가끔 혼자 술잔을 기울이곤 한다.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하다가도, 없었으면 한다. 있어봤자 무슨 의미겠냐는 생각으로 마음을 깊이 후벼 파 본다. 동시에 핸드폰으로는 전화를 걸고 있는 모습이 우습다.


삶이라는 굴레 속에서 34년을 살았다. 삶에 사육당한지는 4년쯤 된 것 같다. 그렇게 하루는 저물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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