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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령 Aug 12. 2024

나의 주거문화사 11

551-25 : 서른 살의 이사

  새로 집을 옮기게 되면 새 집에 대한 꿈보다는 떠나는 집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커진다. 모든 세간을 들어내어 빼내고 몇 번을 확인해도 뭔가 부족한 게 있다. 아쉬움이다. 그 때의 집은 차마 두고가는 세간이다. 짐을 다 실은 뒤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나서도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바닥에 얼룩 같은 걸 발견하게 된다. 짐이란 짐은 트럭에 다 실은 터라 얼룩을 닦을 만한 게 눈에 띄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얼룩을 닦기 시작한다. 그렇게 발견된 얼룩은 대체로 잘 지워지지 않는다. 뭐해, 빨리 오지 않고. 잠깐만 기다려봐. 여기 얼룩이 있어. 옷에 물을 적셔 한참을 닦아내고 나서야 그 얼룩을 깨끗하게 지우게 된다. 나는 또다른 얼룩이 있는지 방 구석구석을 살핀다. 신기하게도 그 때서야 발견되는 얼룩이 있다. 뭐해, 아저씨 기다리시잖아. 밖에서는 친구가 트럭 아저씨의 눈치를 살피면서 나를 재촉한다. 잠깐만, 이거 하나만. 나는 다시 얼룩을 닦기 시작한다. 내버려둬요. 짐 다 실어놓고 할 일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체념 섞인 느긋한 말투를 길게 끌고 올라가는 담배연기가 보인다. 그 연기가 감나무의 가지들을 흔들고, 어디론가 흩어질 때쯤, 어차피 여기 오는 사람이 다시 청소할 거야. 기다리다 못한 친구가 날 설득시킨다. 나는 그 때서야 바닥을 닦는 것을 그만둔다. 사실 몇 개 더 발견한 얼룩이 있었는데, 그 얼룩들은 그냥 두고 나온다. 내가 이 년 동안 살면서 남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에 살던 사람, 아니면 그 전에 살던 사람이 남긴 것, 나는 그것들과 함께 살았다. 그들과 함께 살았다. 나는 나와 한번도 ‘우리’가 된 적 없던 사람과 살았을지도 모른다.          



 

네가 있던 자리에는 너의 얼룩이 남는다

강아지 고양이 무당벌레 햇빛 몇 점

모든 존재는 있던 자리에 얼룩을 남긴다     

환하게 어둡게 희게 검게 비릿하게 달콤하게

몇 번의 얼룩이 겹쳐지며 너와 나는

우리가 되었다     

내가 너와 만난 것으로 우리가 되지 않는다

내가 남긴 얼룩이 너와

네가 남긴 얼룩이 나와

다시 만나 서로의 얼룩을 애틋해할 때

너와 나는 비로소 우리가 되기 시작한다     

얼룩이 얼룩을 아껴주면서

얼룩들은 조금씩 몸을 일으킨다

서로를 안기 위해

안고 멀리 가면서 생을 완주할 힘이 되기 위해     



김선우, 「그러니까 사랑은, 꽃피는 얼룩이라고」, 『내 따스한 유령들』(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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