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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e Nov 12. 2023

Manly beach, 자신에게 맞는 여행을 할 것.

2016.12.26.

  

'Manly beach'

 Manly beach에 도착하고 나니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Coogee, Bondi beach도 가보았지만 여기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상대적으로 붐비지도 그렇다고 한적하지도 않은 그런 편안한 느낌의 들었다. 특징적인 모습이라면 단연 해변 옆에 우뚝 솟아있는 나무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안타깝게도 내게 Manly beach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Manly beach, 해변 옆에 우뚝 솟은 나무가 인상적이었다.


 Mariano는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표정을 짓더니 웃통을 벗고서 모래사장에 곱게 깔고는 바로 그 위로 드러누웠다.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흉내나 내보자는 생각으로 나도 셔츠를 벗고서 바닥에 깔고서 눕고서 하늘을 쳐다봤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 멋있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갑자기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럴 땐가?'


 불현듯 회초리처럼 나타난 생각이 머리끄덩이를 낚아채는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이 앉아보는데 머리카락, 웃통, 바지 사이에서 고운 모래가 흘러나왔다. 이 고운 모래가 지금 내게 필요치 않는 것처럼 이곳에서의 시간도 급 의미 없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옷을 털어내고, 근처 벤치에 앉아 아침부터 기웃거렸던 '호주나라'며, '선브리즈번' 같은 사이트에서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삼십 분 정도 지났는데도 Mariano는 미동조차 없었다. 각자 사정이 있는 것이겠지만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혼자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시작부터 지각에, 여길 올지 안 올지 선택권까지 줬던 Mariano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차마 먼저 가겠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는 찰나 마침 소나기가 내려서 누워있던 Mariano가 벤치 쪽으로 걸어왔다. 나도 참 뻔뻔한 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서도 곧장 언제 돌아갈 예정인지, 아니면 나 혼자라도 가겠다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내 말을 들은 착한 Mariano는 그럼 밥이나 먹고 달아가는 건 어떻냐고 되물어왔다.


노을지는 Manly beach. 힘들 때 웃는 게 일류라는 말이 떠올랐는지 힘들지만 그냥 웃었다.


 Taronga zoo까지는 몰랐는데 Manly beach에 오고 나니 생각이 확실해졌다.

'나는 혼자가 편하구나.'

 며칠 전 Coastal line walk를 할 때만 하더라도 누구 하나 더 같이 다녀도 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혼자가 훨씬 더 편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더없이 즐겁겠지만, 그걸 따지기엔 쉬러 온 Mariano와 생존을 논할 내가 가질 공통분모는 너무나 적어 보였다. 아마도 머릿속에 산더미처럼 쌓아둔 걱정들이 산사태처럼 모조리 쏟아져 내린 탓에 기분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게 분명했다. 이 순간을 즐기고 싶은 Mariano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단지 즐기지 못하는 내가 한스러울 뿐. 그러더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맞는 여행을 할 것'

각자의 여행이 비슷해 보이지만,
저마다의 목적지는 모두 다르다.


'여행'이라고 해서 같은 여행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여행의 행위가 내게는 노동일 수 있고, 나의 쉼 같은 여행이 다른 이에게는 지루함으로 다가갈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워홀러의 본분으로 당장 정착 준비만이 가장 우선순위였던 내가, 걷고 구경만 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역시나 욕심이 이번에도 큰 문제구나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페리 안, 고민과 걱정이 머리를 채워가고 있을 때,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됐다. 페리 한쪽 편에는 밤이, 다른 쪽에는 아직 낮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밤과 낮의 경계, 경계라고는 하나 어찌 되었든 한쪽은 밤이고, 한쪽은 낮일 텐데, 그럼 지금 나는 언제일까?

Circular quay로 돌아가는 페리 안, 밤과 낮의 경계가 느껴지던 신기한 순간.


 그 많은 걱정을 떠안고 왔으면서 정작 숙소에 오니 뭐 하나 잡히는 게 없었다. 매번 우물쭈물 대던 내 모습이 싫어질 때쯤, 예전에 친구가 '그 고민은 그만한 시간이 필요한 문제였을 거야'하고 위로해 준 말이 떠올랐다. 이제는 정말 결정해야 할 때가 된 거 같았다. 모든 일이 잘 풀릴 수야 없겠지만 마음만은 그러길 바라본다. 갈림길, 정하지 않으면서 저절로 되는 건 없다. 고민은 많지만 밤은 왔고, 다시금 꼬깃꼬깃 접어두고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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