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8.
백패커에 도착하고 나서는 다시 생존을 머릿속에 담았다. 락커에서 짐을 찾고 공항에 갈 궁리에 빠지니 '이 무거운 걸 어떻게 들고 간담?' 하고서 고민이 들었다. 마침 오며 가며 보았던 공항 픽업 버스가 떠올랐고, 곧장 프런트(front desk, reception)에 가서 물어보려는데, 하필이면 여태까지 서비스가 시큰둥했던 남자 직원이 안에 있었다. 그래도 할 건 해야 하니 "I'd like to use airport bus service"라고 물어보니, 역시나 답변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돌아왔다.
You can't use that service.
You'd better take a train.
내 오해일 수도 있고, 그동안 선입견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악의를 가지고 물어본 것도 아닌데 그렇게 퉁명스럽게 대답할 것인가 생각하니 괜히 심퉁이 났다. 안 그래도 어눌한 영어 실력에 열등감까지 느끼고 있는데, 대놓고 무시당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더 나빴다. 그동안은 '아하하'하고 웃는 게 전부였는데, 돌아서고 나서도 분이 풀리지 않아 다시 돌아가서 "Why I can not use that service?"라고 물었다. 그제야 비행시간이 언제냐고 물어오는 게 아닌가? 7:00 pm이라고 했더니, '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안돼. 그리고 사전에 예약을 했어야지' 같은 말을 덧붙였다.
내가 물어본 시간은 4:30 pm 정도, 미리 알아봤을 때도 호주 국내 항공은 한 시간 전에만 도착해도 문제가 없다고들 하던데…, 게다가 Central에서 Domestic airport까지는 10-15분밖에 안 걸리는데? 늘어나는 점점점만큼 내 마음속 억울함 또한 점점 커져만 갔다.
사람이 억울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하고서 지난 것들이 떠오르곤 하는데, 이 인간의 대사도 어김없이 곱씹어보게 되었다. 그러자 고구마줄기처럼 지난번의 이 인간의 행동 중에 뭣좀 물어보는데 설명하다가 답답하단 표정을 지으며 다른 동료에게 Toss 하고 떠나는 모습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방금 전에도 비행시간은 물어보지 않고 사용할 수 없단 얘기를 한 게 떠오르니 더욱더 열이 났다.
Whatever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_ Friedrich Nietzsche
Kelly Clarkson의 노래인 줄만 알았는데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라고 해서 놀랐던 그 문장. 영어를 못해서 억울한 이 상황에 이 문장이 떠올랐다.
'망할 놈의 Shake it, 내가 니 같은 놈 때문에 영어 잘하고 만다!!'
마음속으로나마 시원하게 욕 한 사발 날리고 나니 나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픽업 서비스로 공항 가면 짐 옮기기도 편하겠다 생각했는데, 다시 쌓여있는 짐가방과 캐리어를 보니 뾰루뚱한 표정으로 현실로 돌아왔다. 어차피 지나간 것은 지나가겠거니 하며 기왕 이렇게 된 거 체력이나 길러보자는 마음으로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음번에는 저런 재수는 만나지 않기를 바라며, 혹은 내가 더 강해져 있길 바라며.
비행 출발 시간은 7:00 pm, 지금은 4:30 pm, 한 시간 전인 6:00 pm까지 도착해야 한다고 봤을 때에도 이동시간 넉넉잡아 삼십 분으로 쳐도 한 시간은 족히 남은 게 느껴졌다. 억울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언제까지 매달려 있을 것도 아니기에 가볍게 숨을 내쉬고서 다시 온몸에 주렁주렁 짐을 매달고 양손에는 캐리어와 스포츠 가방을 움켜쥔 채 숙소를 빠져나왔다.
일주일 하고도 하루 더, 호주에서의 처음을 겪었던 이곳을 떠나자니 부족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좀 더 가볍게 다가가지 못해서 좀 더 어울리지 못했던 내 모습, 호주에 오고 나면 바뀐 환경만큼 단숨에 바뀔 것 같았는데, 막상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감성을 느낄 겨를도 없이, 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깥의 열기가 온몸을 감싸더니 온몸이 땀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위기다 싶은 생각에 지체 없이 공항행 기차를 타러 역으로 향했다. 미우나 고우나 나의 첫 숙소 백패커, 진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