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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벌레 잠잠이 Oct 10. 2021

가고 싶은 학교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학교 <서머힐>을 읽고


서머힐의 장점이란,

 어린이들의 삶이 겁이나 증오에 물들지 않고 건전하고 자유롭다는 것이다.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책상에 붙들어 앉힌 채,
대개는 별 소용도 없는 것들을 가르치는 학교는 옳지 않다.


  누가 감히 학교에 대해 이렇게 속 시원하게 말한단 말인가. 언제라도 한번 학교가 우리에게
어떤 부작용을 주는지 말해주는 이가 있었던가.


 초등학교 6년을 시작으로 중고등학교  6년에 이제는 대학 4년도 필수가 된 지 오래인 시대다.
하지만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닌 우리 시절을 돌이켜봐도 또 초등학교를 다니는 지금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봐도 ‘학교’라는 존재는 ‘자유’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의무와 억압이 당연한 곳. 그래서 학교에 가기 즐거운 날보다는 가기 싫은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로부터 강산이 몇 번이나 변했지만 ‘학교’라는 곳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리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가 신나고 자유롭고 즐거운 곳이 아닌 억압과 규제와 의무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서머힐>에서는 그런 학교는 옳지 않다! 고 말하고 있다. 신선한 한 줄기의 봄바람이 나를 감싸고 지나갔다.


누군가가 한 번쯤 그 시절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더라면 학교도 자유롭고 즐거운 곳일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런 학교도 있노라, 는 얘기를 해주었더라면 나의 학창 시절은 좀 더 환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이런 기대감과 호기심을 안고 <서머힐>을 읽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영혼에게 바치는 책, 이라는 부제를 붙여도 좋을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환희했고 때로 전율했으나 내 안에  이미 굳어져있는 억압의 덩어리들 때문에 절망도 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그리고 내 안에 불어온 자유로운 바람이 시원하긴 했지만 불안하기도 했던 이유를 다시 본문을 곱씹어보며 찾아보고 싶어졌다.


 서머힐 학교는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이상적인 학교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온전한 자유를 주는 학교. 아이들에게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권리와 듣지 않을 권리를 주는 학교.


모든 교사와 교장, 학생이 학교자치회에서 똑같이 한 표의 힘을 갖고 있는 학교. 행복한 교육이야 말로 행복한 삶이라는 진리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교장이 있는 학교.


이런 곳이라면 그 어떤 아이라도 학교에 가는 일이 즐거울 것이다. 학교에 가는 일이 신나고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아이는 인생도 행복한 것이라고 느낄 것이다.


 이렇듯 지상낙원 같은 학교를 지금으로부터 무려 90년 전에 설립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런데 왜 근 한 세기가 지나도록 대부분의 학교들이 변하지 않고 여전히 의무를 강조하며 억제와 규제로 점철되어 있는가.


 먼저 나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았다. 만약 서머힐 같은 학교가 우리나라에 있다면 아이를 이 학교에 보낼 용의가 있는가, 하고 말이다.


많은 망설임의 시간을 갖겠지만 내 안에서 ‘글쎄’라는 대답이 나왔다. 어쩌면 나의 이러한 이중적인 잣대가 이 책이 출간된 당시 논란을 일으켰던 이유와 맞닿는 지점은 아니었을까.


 다른 것보다 ‘자유’를 주긴 하지만 아이들에게 독립된 공간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이들은 대부분 네 명의 친구나 선배, 후배와 같은 방을 쓰게 된다. 자기 만의 공간이 없고 모든 시간을 공동체의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이 불편할 듯했다. 또한 ‘성’에 대한 저자의 철학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이들에게 탄생에 대한 궁금증을 사실대로 알려주고 설명해주어야 한다는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이 자신의 나체를 남에게 보여주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거나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옷을 벗는 일까지도 자유롭게 한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분명 ‘성’이 숨겨야 할 어떤 것이거나 더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본성에 충실한 것만이 억압에서 해방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만약 내 아이들이 아닌 내가 다니고 싶은 학교를 고른다면 서머힐을 택할 것인가, 도 스스 로에게 물어보았다. 이 질문에도 망설이긴 하겠으나 ‘예스’라는 답이 나왔다. 어른이건 아이이건 마음속에서는 자유롭고자 하는 소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자신의 자유스러운 마음은 알고 있으되 아이들의 자유에 대해서는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같은 질문에 대해 내 아이에 대해서 물었을 때와 나에 대해서 물었을 때 다른 대답이 나온 것도 이러한 이중적인 마음이 내게도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의 자유로운 본성대로 자랄 수 있는 학교, 아이들을 온전히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학교, 그래서 지식보다 행복을 먼저 배울 수 있는 학교. 그런 학교가 이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도 뿌리내릴 수 있도록 어른이 먼저 마음을 열었으면 한다.


  그리고 누구 탓을 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아이를 온전히 믿고 지지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저자 니일의 말대로 아이들의 모든 문제 행동은 사랑이 부족하다는 외침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아이들의 이러한 외침에 귀를 막고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보게 된다.


 ‘불안과 갈등 없이 자유롭게 자란 어린이는 인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서 나간다.’는 말을 부모가, 교사가, 교육을 걱정하는 이 땅의 어른들이 한 번쯤 되새겨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한 줄 평

내 자유와 꿈, 행복이라는 단어가 반짝반짝하는 학교!



읽으면서 책 뒷여백에 메모할 내용도 많았다.

책 제목: 서머힐

작가: A. S. 니일

역자: 손정수
출판사: 산수야 | 201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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