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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벌레 잠잠이 Jan 23. 2022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2022년 1월 23일 (일) 새벽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생각합니다.

어머니와 호주 동생과 함께 간 빵집에서는 아버지께서 단팥빵만큼이나 좋아하시던 꽈배기를 보고도 생각합니다.


스테이크를 먹는 유튜브 방송을 보다가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외식할 때면 종종 스테이크가 드시고 싶다하시던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때로 좋아하지 않는 영화 관람도 저와 어머니를 따라나서며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을 좋아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테이크를 썰어드리고 건배도 하며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했던 눈부시게 행복했던 순간들을 생각합니다.


동생을 위해 장어덮밥을 배달해 달라시던 어머니도 아버지께서 즐겨 드시던 장어정식을 떠올리셨겠지요.

한정식만큼이나 비싼 가격이었지만 우리 가족 모두가 다 코로나를 피해 도시락 포장을 해서 장어정식 등으로 함께 식사를 했던 그날을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콩나물국밥이 먹고 싶다는 동생을 위해 어머니가 드실 음식까지 2인분 주문을 하며 편육을 추가 메뉴로 골라 넣으면서도 콩나물국밥집에서 아버지께서 권하셨던 모주를 기억해봅니다.


암 진단을 받고 진료와 치료를 위해 병원에 오가며 어쩔 수 없이 병원 지하 식당에서 식사를 함께 했던 순간도 생각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마도 피검사를 하고 주치의 면담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라 빈 속이었기에 전복죽을 시켜드렸는데, 냉면이 드시고 싶다고 하셨지요.


저는 밥 대신 라면을 주문했기에 아버지도 면을 드시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복죽 반을 드시고 냉면을 드시라고 냉면을 주문해 드렸던 그때를 떠올려봅니다. 그래도 아버지께서 드시고 싶다던 음식이 소화가 되지 않을까 봐, 걱정을 하면서도 주문을 해드렸던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휠체어를 타고 병원에 진료를 오셔야 했던 순간에 편의점 나들이라도 했던 그 겨울을 떠올립니다.

병원 편의점에서 드시고 싶은 간식을 고르라고 하며 휠체어를 타신 아버지를 밀고 천천히 가판대를 지나던 그 순간이 느리게 지나갑니다.

아버지는 그 편의점의 간식들 중에서는 호빵을 고르셨잖아요.


팥이 든 호빵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병원에 입원해서 식사를 하실 수 있을 때는 간식으로 과일이나 요거트, 호빵이나 군고구마도 전해드렸었는데요. 그 길고도 짧았던 시간들이 자꾸 생각납니다.


지금은 죽도 드시지 못하고 경관식으로 버티고 계시는 아버지,

병원에 계실 때 면회조차 되지 않으니 어머니와의 전화통화와 가족들과의 하루 몇 번의 통화가 유일한 낙이셨을 텐데, 이제는 휴대폰 통화조차 어려운 상황이네요.

중환자실에 누워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점점 심해지는 환부에서 얼마나 통증이 극심할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저의 무력감조차 사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투병 중에도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을 해내시며 퇴원해서 집에서 지내실 때는 할 수 있는 운동을 천천히 하고 가급적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 일들을 하시면서, 휠체어에 앉아서도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계속하셨던 모습을 경의롭게 떠올립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일상을 보내야 하는지, 어떻게 각자의 일을 해나가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신 아버지,

힘내세요.

너무 아프지 않으시기를, 너무 힘들지 않으시기를, 너무 외롭지 않으시기를,

부디 또 편안하고 무사히 하루를 보내시기를, 바라고 또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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