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신화 <삼공본풀이>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가 된 지 한 달 가까이 되었는데 새해 인사라니 뜬금없지요? 우리는 새해가 되면 새해니까 복을 많이 받으라 인사합니다. 그런데 복은 어떻게 받는 걸까요?
오늘은 신화에 전하는 복 받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삼공본풀이>는 부모가 딸 셋을 낳아 기르다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루는 부모가 세 딸을 불러 묻습니다.
"너는 누구 덕에 사느냐?"
첫째 딸은 대답합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부모님 덕분에 삽니다."
부모는 흡족해하며 둘째 딸에게 또 묻습니다. 둘째 딸도 대답하지요.
"하늘과 땅 그리고 부모님 덕분에 삽니다."
부모는 마찬가지로 흡족해합니다.
그리고는 셋째 딸, 가믄장아기에게 묻습니다. 가믄장 아기는 말합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부모님 덕분입니다."
그러나 대답이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 타고난 복 덕에 살지요."
그러자 부모는 "불효막심한 것"이라 화를 내며 딸을 내쫓습니다.
이 집은 본래 가난한 집이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믄장아기가 태어나고 집이 부유해졌대요.
여러분 '복덩이'라는 표현을 들어보셨는지요?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집안에 들어왔을 때 집에 좋은 일이 겹겹으로 일어나면 "복덩이가 굴러들어 왔네."라고 하지요.
그러는가 하면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집에 들어오고, 나쁜 일이 연달아 일어나면 "인동티가 났다"고들 합니다. 동티는 건드리면 안 되는 자연물(나무, 땅 등)을 건드려서 아프거나 죽는 걸 이야기합니다. 어떤 계기로 부정적인 기운이 발생하는 걸 따서 사람이 새로 온 후에 집안에 나쁜 일이 몰아치면 이걸 인(人) 동티가 났다고 하는 거죠.
가믄장아기는 복덩이였던 겁니다. 가믄장아기가 태어나고 그 집안에는 경사만 이어졌고 금세 부자가 되었으니까요. 그렇게 본다면 "내 타고난 복 덕에 산다"는 가믄장아기의 말은 거짓이 아닌 듯하지요.
그런데 부모는 자신들의 공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어린 딸을 그 자리에서 내쫓아버렸습니다. 가믄장아기는 그 말을 듣곤 순순히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곤 어떻게 됐느냐고요? "굴러온 복을 발로 찼다"는 말처럼, 복덩이인 가믄장아기를 내쫓은 부모는 금세 쫄딱 망해 거지가 되었습니다.
길을 떠난 가믄장아기는 삼 형제가 살고 있는 한 집에서 도착해 머물기를 청합니다. 첫째와 둘째는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으며 가믄장아기를 구박하지만 잘생긴(신화에서 이 점을 강조하고 있어요!) 셋째는 빙긋이 웃으며 가믄장아기를 환영합니다. 또 가믄장아기가 자신이 집에서 즐겨 먹던 음식을 내어놓자 첫째와 둘째는 이런 걸 누가 먹냐며 구박하지만 셋째만큼은 또 맛있게 먹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가믄장아기와 셋째는 결혼합니다
삼 형제는 마 캐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마를 캐러 갔죠. 첫째의 자리에서는 똥만 나오고, 둘째의 자리에서는 지네만 나옵니다. 한편 셋째는 금덩이가 와르르, 은덩이가 와르르 나온 것이지요. 순식간에 가믄장아기 부부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가믄장아기를 사람이 아니라 ‘복’으로 치환해 봅시다. 복이란 건 우연히 우리 곁에 나타납니다. 가믄장아기가 태어나고, 삼 형제의 집에 찾아온 것처럼요. 그런데 사람들은 복을 잘 못 알아봐요. 나의 이기심에 굴러온 복을 쫓아버리기도 하고, 나의 좁은 마음 때문에 복을 떠넘기기도 하지요. 이곳저곳에서 튕겨져 나온 복은 어디로 가는가 하면, 바로 착한 셋째 아들입니다.
셋째는 자신과 다름을 마음 넓게 이해합니다. 또 이타심을 가졌습니다. 가믄장아기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키워준 은혜에 감사하며 마의 맛있는 부분은 기꺼이 부모에게 양보합니다.
우리는 대운을 바랍니다. 그런데 그 운은 어쩌면 우리 곁을 떠돌고 있을지도 몰라요. <삼공본풀이>는 말합니다. 그 운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운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내 곁에 남아있는다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가믄장아기의 부모처럼 부자가 되었다가도 쫄딱 망해버릴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사주를 즐겨보곤 합니다. 스스로의 운명을 점쳐 보는 것이지요. 거기선 이런 이야길 듣곤 합니다.
"이때 결혼운이 들어와 있어."
"취업운이 내년에 들어와."
<삼공본풀이>의 이야기를 떠올려본다면 이런 운은 나의 삶의 태도와 무관하게 내 곁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비록 내 곁에 우연히 내가 바라던 운이 찾아왔다 하더라도, 나의 마음가짐이 선(善) 하지 않다면 그 운은 잠시 머물다 떠나갈 거예요. 마치 사람과 같이요.
사람도 운과 마찬가지예요. 어느 날 나의 곁에 나타나지요. 때로는 내 마음의 그릇보다 큰 인연이 생기곤 합니다. 그런데 종종 자신 곁에 있는 소중한 인연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나 우리 모두는 각기 마음이 있어 주는 마음보다 받는 상처가 크다면 혹은 부정적인 영향만 받는다면 그 곁을 떠날 수밖에요. 그러니 늘 관계의 가변성을 마음 한편에 두고 감사하며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善)한 마음으로요.
그런 점에서 가믄장아기가 머물고 떠나는 이야기는 운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좋은 운/사람은 종종 찾아온다고. 그것을 알아보고 좋은 운이/사람이 내 곁에 영영 머물길 원한다면 우선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요.
주위를 눈여겨봐 보세요. 그리고 살펴보세요. 혹시 저 사람이 나의 가믄장아기가 아닐까? 내가 그를 충분히 소중히 대하고 있을까 하고. 그리고 혹 내가 지금 너무 운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조만간 찾아올 가믄장아기를 기다리며 나의 선(善)함을 다듬어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