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으그흐 Jan 21. 2024

언어로 펼치는 아름다움

양손프로젝트 <파랑새>를 보고

틸틸과 미틸이 파랑새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는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그리고 긴 여행 끝에 마치고 돌아온 후에야 자신들의 방 안에 있던 새가 파랑새인 걸 발견한다는 것도요. 행복이란 멀리 있지 않고,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이 이야기는 1908년 벨기에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가 쓴 희곡이랍니다. 동화인 줄 알았던 분이 많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시작은 연극에 올리기 위한 대본이었다는 거죠.


틸틸과 미틸은 따뜻하고 안락한 집을 떠나 추억의 나라, 밤의 궁전, 숲 속, 묘지, 행복의 궁전 그리고 미래의 나라로 떠납니다. 이걸 무대에 올린다고 상상해 봅시다. 영화라면 환상적인 배경으로 각 공간을 표현하겠지요.  그렇지만 배경 전환에 제약이 있는 연극이라면요? 내 눈앞에 생생하고 화려하게 공간을 묘사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할까요? 저였다면 어떻게든 그 공간을 표현할 장치를 고민했을 것만 같아요.


양손프로젝트는 단 두 개의 의자 그리고 옆에서 비추는 조명만을 무대에 두었어요.



양손프로젝트는 배우 손상규, 양조아, 양종욱과 연출 박지혜로 구성된 공동 창작 집단이에요. 이번 <파랑새>는 그중에서 양조아, 양종욱 배우가 출연했답니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파랑새>를 펼쳐 나갑니다.

양조아 배우는 수많은 배역을 오가며 진실성 있고 밀도 높은 연기로, 양종욱 배우는 언어적 실험을 통해서요.


양조아 배우는 틸틸, 강아지, 설탕, 미래의 동생, 사랑에 빠진 아이 등 수많은 역할을 연기해요. 특히 추억의 나라에서 틸틸, 할머니, 할아버지를 순식간에 오가던 순간은 감탄을 자아냈어요. 미세한 톤과 몸짓의 변화로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거든요.

저는 <파랑새>를 총 세 번을 보았는데요. 막공에 가까웠던 세 번째 관람일에는 양조아 배우님의 연기엔 유독 감정이 가득했습니다. 분명 지난번엔 이 장면에선 담담하게 연기하셨던 것 같았는데 싶은 순간들이 있었죠. 그 덕에 감정적으로 더 농밀하고, 순간의 두려움과 아쉬움과 기대에 충만한 <파랑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양조아 배우가 인물-되기를 통하여 이야기한다면 양종욱 배우는 마치 우리가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에 장면을 그려나가듯 언어적 실험을 통해 극을 이끌어나갑니다.

음의 높낮이를 조정하거나 리듬감을 부여하여 장면에 대한 느낌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특히 배경을 묘사할 때에 단어 배치를 변용하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천장. 까만 천장. 아주 높은 까만 천장'처럼, 단계적으로 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확장시켜 나가는 거지요. 양종욱 배우의 대사를 들으며 내가 상상한 공간을 수정하고 구체화시키며 <파랑새> 속 환상적 세계를 감각할 수 있었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가 어우러진 <파랑새>는 세 번을 보아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요. 매번 새로웠고 매번 그 세계에 깊게 빠져들었어요. 이야기를 이미 모두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양손프로젝트의 <파랑새>가 저에겐 매우 감각적인 극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순간순간 감각할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것들을 충실히 느끼다 보면 어느새 틸틸, 미틸과 이별하는 순간이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바로 큰 기쁨들이 빛과 이야기를 나누던 부분이랍니다. 빛을 마주한 큰 기쁨들은 행복하지만 각기 지니고 있는 한계가 있다며 빛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 달라 말하지요.

이해하는 기쁨은 자신을 넘어설 수 없고, 정의로운 기쁨은 그림자를 넘어설 수 없고 또 사랑하는 기쁨은 꿈을 넘어설 수 없다며 빛에게 이젠 베일을 벗고 모습을 드러내 달라고 말하지요. 그 장면을 보며 속으로 "맞아 맞아"하며 눈물을 흘렸답니다. 이해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에 갇히고, 정의로움은 어둠 속에서만 역할할 수 있고, 사랑하는 기쁨은 꿈과 같지만 이것들이 모든 기쁨을 아우를 순 없을 테니까요. 그것을 넘어서는 큰 기쁨이란 무엇일까 빛이 베일을 벗고 메시아처럼 우리 앞에 나타나는 날이 올까요?

원작을 보니 이 대사가 아니더군요. 이 장면 외에도 양손프로젝트의 각색이 빛을 발하는 장면이 정말 정말 많았답니다. 연극을 매일, 원할 때 다시 볼 순 없을 테니 각본집이라도 소장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끔 행복이 필요할 때 들여다보고 싶어요.


<파랑새>에 대해서라면 하루 종일도 떠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아무도 그런 글을 원하진 않을 것 같으니 오늘은 이쯤에서 글을 마무리해 볼까 합니다.

<파랑새> 같은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까요? 큰 아름다움을 마주했을 때 느낄 수 있는 큰 행복을 또 만날 수 있기를 염원하며 한동안은 내 주변의 파랑새를 바라봐 볼까 합니다. 이만, 안녕!



파랑새의 마지막 관람일에 친구가 선물해준 파랑새 키링이에요.

작고 귀여운 행복을 선물해준 나의 친구, 나의 관극 메이트. 넌 나의 큰 기쁨이야!

작가의 이전글 [한국의 신화] 뇌물은 저승에서도 통한다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