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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Dec 02. 2022

요즘 엄마들은 자기 편하려고 둘째를 안 낳네

10년 전 첫 아이를 낳고 출산과 육아에 넌덜머리를 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했었지만 사실 전혀 둘째에 대한 미련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무슨 정신으로 애를 키웠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시간은 흘렀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서 적어도 낮 시간만큼은 한 개인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유가 생기니 단념과 미련 사이를 오가는 날이 종종 있었는데 그 무렵 주변 사람들의 인사는 이랬다.


"애 낳아도 똑같네~ 안 변했다~"라는 최고의 인사 또는 "둘째는??"이라는 진부한 인사. 하지만 아이가 클수록 "둘째는?"의 횟수만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애기 엄마 같지 않다던가, 애 낳아도 하나도 안 변했다 같은 인사는 기저귀와 이유식이 든 가방을 벗어던진 날에야 들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둘째에 대한 인사는 아이가 초등에 입학해서도 꾸준히 따라다녔다. 가끔은 거기에 엄마가 힘들어서 하나만 낳는 거라는 무례한 말을 들을 때도 있었다.


어쩔 때는 대꾸 하기 싫은 날도 있었지만 이 정도 오가며 듣는 인사야 참을만 했다. 어지간하면 웃어넘기고, 그러려니 하면서 한 귀로 흘리면 되니까. 그런데 아직도 잊히지 않는 사건이 있다. 이건 정말 사건이었다. 


남편을 통해 건너 건너 알게 된 지인이(평소 사석에서 만남 한번 가진 적 없는데) 전화가 와서는 몇 마디 말 끝에 다짜고짜 "그런데 둘째는 안 가져요?"라는 것이다. 여기까지야 속으로 '또 그 질문이군'하며 어영부영 대답할 수 있었지만 그다음으로 날아온 질문에는 할 말을 잃었다. 왜 둘째를 안 낳냐, 저녁에 남편과 관계는 가지는 거냐, 몇 번이나..... 도무지 상식적으로 내뱉기 힘든 말을 이어갔고, 너무 당혹스러웠던 나머지 내 생각 회로는 정지되어 버렸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로 이런 종류의 질문 자체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대답하면 더 이상 못 물어본다는 나름 단방약 같은 답변을 듣게 됐는데 그 말을 듣고는 무릎을 탁! 쳤다. 무슨 대답인고 하니, "아~ 저도 낳고 싶은데 안 생기더라고요, 첫째를 쉽게 가졌다고 둘째도 쉽게 생기는 건 아니네요."였다. 한마디로 난임이 둘째 때도 생길 수 있다는, 묻는 사람이 되려 미안해지는 대답이었다. 물론 그 충격적인 질문을 던진 자는 이렇게 이야기했어도 똑같은 말을 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적어도 일반적인 상황은 이 대답으로 충분히 해결되었다.


그 대답을 들은 후 더 이상 이런 종류의 대화를 지속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곧잘 이 방법을 쓰곤 했는데 말이 씨가 된다고 진짜 그럴 줄은 몰랐다. 실은 아이가 커가면서 나는 몇 번의 유산을 겪었고 그 후로는 몸도 약해졌고 테스터기를 사는 날도 점차 줄었다. 어쩌면 이미 그렇게 된 일인지도 모르지만 회피용 대답을 찾다가 이제 그 대답이 진짜가 되는 상황같이 느껴졌다. 


그나마 그때까지 둘째 문제는 내게 '어려운'일이지 안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작년에 선근종 진단으로 루프 시술을 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보통 피임용 시술로 알고 있던 루프 시술이 내게는 자궁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처방이었다. 이로써 나는 여전히 '어려운'일로 남을 줄 알았던 일에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하지 않는 것'과 '못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 더 이상 내 소관이 아님을 알게 된 후로 그동안 품었던 생명에 대한 오만함을 뉘우쳤다. 그러면서도 어디까지 진심인지 스스로도 헷갈리는 미련과 허전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다 가질 수 있는 삶은 없을 테니, 이제는 하늘이 나에게 하나만 잘 기르라고 하시나 보다 생각한다. 그래도 어제처럼 아들이 외롭다고 할 때나 왜 자기는 동생이 없냐고 할 때는 짧은 찰나의 머뭇거림과 함께 지난날 수없이 받았던 "둘째는?"이 떠오른다. 



예전에 이 고민을 아주 나이가 많은 언니에게 물었더니 "얘~ 그 고민은 60이 돼서도 하는 고민이라더라!, 그리고 하나 낳으면 둘 낳으라고 하고, 아들 둘이면 딸이 없어 아쉽다고 하나 더 낳으라고 하고! 정답이 있겠어?"라는 대답을 들었다. 


어쩌면 나는 의사 선생님이 정답지를 쥐어주신 덕분으로 비교적 명쾌한 답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둘째 문제는 사람에 따라 참 어렵고, 끝끝내 따라다니는 고민거리가 될 수도 있다. 요즘에도 외동을 둔 엄마들이 그런 질문을 받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생명은 하늘이 주관하는 일이라는 것을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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