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되는 소비
마음이 곤궁한 날,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주는 밥상이 그립다. 같은 찌개라도 내가 한 것 말고 해주는 음식이 먹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아무리 마음을 얼르고 달래도 주머니를 막을 수가 없다.
"네가 차려주는 밥상이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도깨비의 명대사가 이렇게 적당할 수가;;
주말이면 거의 외식을 하는 편이라 그 덕분에(?) 기운 내서 평일 집밥을 열심히 해 먹고 있지만 이번주는 그러지 못했다. 한 번은 뜨끈한 국물에 손칼국수가 생각나서 외식을 했고, 쉬지를 못해서 설거지도 이틀째 미뤄둔 날, 배고프다고 재촉하는 아이의 속도에 맞추기 어려워서 배달을 시키고 말았다.
친정에 갈 일이 있어서 엄마밥 먹고 와야지 했던 날은 무거운 식재료 장을 보기 힘든 엄마 생각에 장을 조금 봐서 갔더랬다. 무, 양파, 감자 같은 것들. 어떤 음식이든 기본 식재료로 쓰이는 것들이라 필요하기도 하고, 다 큰 딸이 엄마를 또 가스불 앞에서 고생하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함 때문에 빈 손으로 갈 수 없었다.
계획대로 하지 않고 감정에 못 이겨 열리는 지갑을 보면 스스로 작아지고 만다. 속으로는 '칼국수 한 그릇 먹는 게 뭐 어떻다고' 싶지만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그러다 고삐 풀린 지갑이 되어 버릴까봐 조심스러워 지는 것이다.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까지 이르면 결국 한숨이 나온다.
큰 부자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쓰는 무분별한 지출을 통제해서 마이너스만 플러스가 되면 되는 건데 그게 이렇게 매번 지갑을 열 때마다 주저하게 되고 계산하게 된다고? 계속 이래야 된다고?
이건 내가 예산을 세우고 체크카드를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이다. 다르게 보면, 이제 드디어 매번 지출에 앞서 남은 돈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고, '필요'에 대한 수많은 이유에서 혹시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든 힘들어지면 하는 질문이 있다.
'꼭 이걸 해야 해?'
'굳이 이렇게 해야 해?'
질문 앞에 '꼭', '굳이', '진짜' 같은 부사를 나란히 두고 나면
'꼭'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고,
'굳이' 이 방법이 아니어도 될 것 같고,
'진짜' 까지는 아닌 게 되는 것 같다.
군더더기 없는 글을 쓰는 방법 중 하나로 불필요한 부사, 형용사를 걷어내라고 하던데 비단 글쓰기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밥상에 있어서도, 내가 해야 할 일에 있어서도 군더더기는 걷어내는 것이 좋다.
내가 하기로 한 일이 힘겨워졌다고 해서 부사를 나란히 두는 질문을 하지는 말자.
'이거 해야 해?'와
'진짜 이거 해야 해?'는
너무 다른 느낌이니까!
그래도,
칼국수와 치킨은 맛있었다.
엄마와 함께 나눠먹은 곶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