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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경지 May 28. 2023

서로 녹아들고 침투하는 기억들

글_오성민 〈Null〉(2011-) 연작 평문

오성민은 무의식에 희미하게 남겨진 기억의 흔적에 주목하며 이를 사진으로 가시화한다. 작가는 과거에 경험된 의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면에 머물러 현재에도 여전히 기억의 흔적으로 존재한다고 상정한다. 그리고 기억을 따라서 마주한 장소를 사진으로 재현한 필름 위에 의도적으로 스크래치를 내어 잠재된 의식, 즉 기억을 표면 위로 끌어올리기를 시도한다. 〈Null〉(2011-) 연작은 스크래치 행위를 통해 기억의 흔적을 형상화하는 것을 작업 방식으로 택한 첫 연작이다. 작가는 작업 노트에서 작업 방식을 ‘재연(recurrence)’이라고 설명하는데, 반복, 회상, 순환 등의 다중적 의미를 갖는 재연은 그의 작업 방식을 설명하는데 적절해 보인다. 왜냐하면, 작가의 작업은 필름 위에 반복적으로 선을 그어 형태를 그려냄으로써 과거의 경험을 회상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떠올려진 이미지를 현재에서 재구성하여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순환되는 모습을 예술의 형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 무의식적으로 덮어두었던 기억마저도 회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마주한다.


    오성민의 작업에서 주목하는 기억의 흔적은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1859-1941)의 기억 개념과 맞닿아 있다. 특히, 베르그송이 그의 대표 저서인 『물질과 기억 Matière et mémoire』(1896)에서 소개한 ‘이미지 기억(image-souvenir)’과 상통한다. 베르그송은 기억을 이미지 기억과 ‘습관 기억(souvenir-habitude)’으로 구분하는데, 이미지 기억을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습관적으로 몸에 새겨지는 기억인 습관 기억과 구별하여 과거를 이미지의 형태로 보존하고 재생하는 기억으로 설명한다.1 실제로 ‘뚜렷하다’, ‘어렴풋하다’, ‘까마득하다’, ‘희미하다’, ‘아득하다’ 등과 같이 기억과 함께 자주 사용되는 서술어들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기억을 그 자체의 윤곽과 색 등을 갖는 이미지로 상정한다. 베르그송은 여기서 더 나아가 과거의 모든 경험이 이미지의 형태로 각각의 고유한 개별성을 간직한 채로 자연스레 비신체적으로 보존되는 기억을 이미지 기억으로 제시한 것이다.2

    오성민의 작업은 이처럼 무의식의 상태로만 머물러 있는 이미지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 심리적 공허함이 느껴지는 장소를 사진으로 재현하고 스크래치 행위를 통해 의식의 표면 위로 건져내는 것이다. 작가는 실내 공간부터 들판, 바다, 설원 등의 자연에 이르기까지 비현실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장소를 촬영하고 상이 맺힌 필름을 긁어내기 위해 무의식에 침투한다. 이로써 제시된 모습은 선적인 수단을 통해 대상의 형태를 표현한 형상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조형적 요소로 기능하거나 추상적인 감정을 표현한 비정형적인 도형과는 구별된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엇을 화면 위에 등장시키는가? 〈Null〉 연작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025〉(2013)처럼 신체 전부를, 〈#018〉(2012)〈#031〉(2014)처럼 손, 머리카락 등과 같은 신체 일부분을 제시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작업할 때 특정 대상 하나를 재현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여러 대상의 부분들을 참조하여 그리는데, 이는 회상에서 떠올려진 이미지를 현재의 의식과 연결하여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베르그송의 회상에 대한 사유를 드러내는 도해와도 같다.3

    지속적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잇달아 일어나는 각각의 경험, 다시 말해 이미지 기억을 다루던 작가는 이들 사이의 간격, 시차 등과 같은 실재의 마디를 탐색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2점 연작(diptych)과 3점 연작(triptych)으로 작업을 보여주는 방식을 도입한다. 두 방식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대상의 변화를 보여주거나 전체와 부분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할 때 유용하다. 작가는 이러한 방식을 〈#032〉(2014)에 적용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른 대상이 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033〉(2014), 〈#038〉(2014) 등과 같이 하나의 대상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각기 조금씩 다른 배경을 가진 필름을 긁어 형상화하는 작업 방식으로 응용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기억과 현재로 재생된 기억 간의 틈(interval)을 탐구한다. 

    때때로 작가는 아주 희미한 기억의 흔적을 표현하기 위해 〈#047〉(2016)과 같이 얼굴의 일부분을 생략하거나 〈#054〉(2018) 같이 배경이 다 비치도록 필름에 얇은 선을 듬성듬성 그려 넣기도 한다. 가장 최근작은 과거의 기억들이 서로 부딪혀서 재생되기도 하고 확대되기도 하는 성질에 주목하고, 촬영된 장소와 스크래치를 통해 드러난 형상이 교차하는 동시에 충돌하는 것을 용인한다. 덕분에 〈#055〉(2023) 속 배경이 발을 딛고 있는 대상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더욱이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감각되게 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그리고 화면을 땋은 머리가 화면을 가로지르는 〈#056〉(2023)은 이전의 시기 작업과 비교했을 때, 함께 배치하는 두 작업의 배경 조합이 과감해지고 선명하게 보이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 얇은 선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이렇듯 오성민의 〈Null〉 연작은 무의식 속에 잠재된 기억을 사진적 재현과 이미지의 기억을 의식 표면 위로 올려 작가의 손으로 만들어 낸 형상을 통해 현재의 삶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베르그송이 언급한 이미지 기억이 과거와 현재가 연결성을 지니고 유기적으로 발전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작가의 작품에서 끌어올려진 기억들은 과거에만 국한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현재와 연관되어 계속 반복되고, 현재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재는 과거이자 동시에 미래이며, 끊임없이 생성 변화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이는 과거, 그리고 미래까지 서로 녹아들고 침투하는 기억을 작업에 적절하게 투영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양상을 오성민의 작업을 통해 목격함으로써 기억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가능해지고, 기존에 지각된 과거의 기억을 구현하는 것에만 머물렀던 회상에서 현재의 삶을 되짚고 창조하게 하는 힘을 마주하게 된다.


1. 김재희, 「베르그송의 이미지 개념-『물질과 기억』을 중심으로-」, 『철학연구』 56 (2002): 279.

2. 앙리 베르그송, 『물질과 기억』, 박종원 역 (아카넷, 2005), 154.

3. 조현수, 「베르그손 〈지속〉 이론의 근본적인 변화: 시간 구성에 있어서 미래의 주도적 역할」, 『철학연구』 95 (2011): 43.


* 작품 이미지는 오성민 작가 홈페이지 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https://www.ohsungmin.com/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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