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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경지 May 01. 2023

가라앉은 순간

전시서문_A.P.23/김연홍, 박예원/2023.4.27. - 5.4.

A.P.23은 작가들의 작업 환경 구축을 위하여 다양한 실험과 관계망 확장을 꾀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Young Art Power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


Young Art Power 프로젝트의 네 번째 기획전, 《가라앉은 순간》은 김연홍, 박예원 작가가 관찰한 특정 대상의 움직임들이 특유의 표현 방식과 시선을 거쳐서 순간의 풍경으로 이들의 작업에 가라앉은 모습들을 선보인다. 두 작가의 작업은 거칠게 분류하면 어떤 정경이나 상황을 의미하는 풍경(scenery)을 담아낸 작업으로 볼 수 있는데, 정지된 순간을 화면에 담아낸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이에 반응하며 밝기가 변하는 빛, 땅 위 사물들의 반복되는 생성과 소멸 등과 같은 미세한 움직임의 순간들을 켜켜이 쌓아서 비가시적인 요소와 화면에 보이지 않는 존재까지 상상하게 한다.


김연홍은 생의 순환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이는 자연의 특성을 작업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는 자연의 우연성이 작용하는 풍경에 주목하며, 보이는 대상뿐 아니라 바람, 빛 등과 같이 비가시적인 자연의 요소와 뒤섞인 순간을 작업에 담아낸다. 나무가 보이는 창가에 놓인〈 해변을 따라 걷는 사람 둘〉(2022)〈 해변 3〉(2022), 그리고 붙박이장을 채운 〈바람과 나무〉(2022)에 이르기까지,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잎과 일렁이는 바다가 과감한 붓질, 그리고 색들의 번짐으로 표현되어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듯하다. 실제로 작가는 천에 물감이 스며들어 퍼져나가는 색면, 선과 점을 수용하며, 우연적으로 남는 마띠에르(matière)로 자연의 생동감을 구현하기를 택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화면 위의 흔들리는 잔상과도 같은 형상들은 물을 가득 먹인 붓질의 흔적이자 자연의 움직임의 순간들이 가라앉은 흔적인 것이다. 최근 작가는 〈A romantic place 1〉(2023)에서와 같이, 대상에서 느낀 작가의 주관적 감상과 더불어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는 기온, 바람, 향 같은 요소를 가시적으로 묘사하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 과정은 서로 충돌하고 결합하는 감각의 편린들을 화면에 가득 채워서 자연의 미묘한 리듬을 구현하는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예원은 움직임의 흔적에 주목하고 작업 과정을 통해 이를 되짚어간다는 점은 김연홍과 유사하지만, 작업에 구현된 이미지와 내포된 질문들은 다르다. 그는 땅 위의 사물들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것을 반복하며 만들어 내는 순간의 풍경에 주목하며, 폐허가 된 혹은 개발 중인 장소를 촬영한 드론 이미지를 연구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작업에 담는다. 드론 이미지는 대부분 조감 시점으로 특정 장소를 촬영하기 때문에 사람, 건물, 숲 등의 개별 존재들이 점으로 환원된다. 작가는 개별 존재들의 흔적뿐 아니라, 그것이 속한 맥락을 함께 파악하기 위해 여러 유형의 이미지를 탐색한다. 〈흔적 연구 1, 2〉(2022)에서는 사막의 폐허를 포착한 이미지를 통해 남겨진 것에 대해 집중했으며, 〈중간지점〉(2022)〈기다림〉(2022)에서는 공사 차량의 움직임의 흔적을 추적함으로써 모이고 남는 것에 대한 사회 연결망의 작동 원리에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여기서 더 확장하여 최근에는 〈삶의 구역〉(2023)에서와 같이 건물들의 집합을 보며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의 궤적을 쫓는 작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작가의 작업에 가라앉은 순간의 풍경들은 옅은 기억과 감각으로만 남았던 이미지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계절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느끼는 시기에 자연의 작은 변화들에 주목하듯이, 순간의 풍경들을 촘촘하게 감각하는 시선과 태도를 제안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들의 작업은 공허하게 헛도는 감각과 강한 자극에 노출되어 높아진 임계치를 가라앉게 하고, 미세한 변화와 움직임에 대한 우리의 감도를 높이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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