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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경지 Dec 08. 2022

파르르

글_모티포룸/2022.12.7. - 11.

공간이 가진 역사성, 위치성, 물성 등의 특유한 속성은 작가의 상상력을 확장한다. 가령, 구도심 속에 방치된 주택의 구조와 거친 면들은 공간을 채웠던 시간을 상상하게 하고, 빨간 벽돌 건물들 사이에서 하얀 외벽을 자랑하는 공간은 주변 환경과 구별되어 미묘한 설렘을 만든다.

   《파르르》는 모듈러 시스템이 적용된 공간의 특성이 전시의 중요한 시작점으로 작용했다. 흰 벽면을 보면 화이트 큐브로 불리는 일반적인 전시 공간과 유사하지만, 바닥과 일부 벽면에 그리드, 즉 모듈 가구를 배치하기 위한 격자무늬가 존재한다. 모듈을 활용하여 구조를 다양하게 생성할 수 있는 듯 하면서 서로 다른 조각으로 네모난 틀을 채우는 펜토미노 퍼즐처럼 몇 가지의 공식이 정해진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확장과 변형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번 전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여, 가변적인 가구와 작품 사이의 균형을 맞추거나 기꺼이 깨트리며 공간의 구조와 작품이 관계 맺는 다양한 전시 방식을 탐구한다. 이러한 방식은 작품을 공간에 안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두지 않고, 이질적인 매체와 의미, 재현이나 표현의 상이한 방식들이 공존하는 이미지를 통해 미세한 진동으로 공간을 채워나간다. 이 일련의 작업은 전시를 어느 하나의 서사나 개념으로 그것 전체를 규정하는 해석을 흐릿하게 하며, 이미지가 일으키는 진동을 감각적으로 가시화한다. 김윤하, 안중필, 장윤지 작가의 작품에 담긴 일렁임, 뒤틀림, 떨림과 같은 진동의 뉘앙스를 찬찬히 둘러보고 섬세하게 감각하시길, 파르르.


    장윤지는 자신이 일상에서 가장 많이 눈에 담아내는 대상을 거울, 유리컵, 밤의 빛을 통해서 다시금 살펴본 시선을 전시장에 펼쳐놓았다. 관람객은 작품이 설치된 구조의 안팎을 오가며, 거울에 반사되고, 유리에 굴절되고, 밤의 어두움에 왜곡된 이미지를 수집한다. 작업에 담긴 시선 떨림은 대상을 선명하게 바라보고자 진동했던 눈의 조리개를 상상하게 한다.

    안중필의 작업은 사진 매체에 기대하는 기계적 객관성, 즉 대상을 기계적으로 복제하는 이미지를 내어주지 않는다. 그의 사진을 의심 없이 건물 외벽을 찍은 사진으로 짐작하고 가까이 살펴보면, 일부는 벽화이고 일부는 건물의 구조물로 뒤섞여있다. 심지어 그림과 실물의 경계가 불분명해 명확한 경계를 가늠하기 어렵다. 일렁이는 물의 흐름을 기록한 사진 또한 원본의 일부를 잘라서 크게 확대함으로써 이미지를 자세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호하게 만든다.

    김윤하는 영상 작업 속 눈알의 변화와 다양한 재질로 구성된 설치물을 통해 낯선 감각을 제시한다. 수납장, 바닥 등 곳곳에 놓인 눈들은 과도한 속도와 양을 가진 시각 정보가 전달하는 감각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한 채 도태되거나 얇은 감각만이 남겨진 투명한 눈들을 은유한다. 바라보는 대상의 상을 분명하게 혹은 전혀 맺지 못하는 무기능의 투명한 눈에 둘러싸여 우리는 무엇을 보고 살아가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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