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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경지 Oct 07. 2022

낯익은 두려움, 불안한 내면들

글_오민수오형근/Imitation Game/2022.6.13-25

오민수x오형근 2인전  《Imitation Game》에 대한 글


군인을 피사체로 삼는 사진 작업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전쟁을 기록하고 재현하려는 욕망은 사진의 발전을 이끌었고, 사진의 발명 이후 20세기 내내 폐허가 된 전쟁터에서 익명의 군인들이 전쟁 보도사진(photojournalism)에 담겼다. 특히,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사진 작업 속 군인 이미지는 한국 전쟁, 군사 정권, 분단 체제 등의 사회적 조건을 드러내는 관습적 상징이었다.1 숙련된 관람객은 오민수와 오형근의 2인전 《Imitation Game》에서 선보여지는 군인 이미지를 이전에 관람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보기와 해석을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진돗개 하나>(2020-2022)와 <중간인>(2010-2013) 연작에서 등장하는 군인 이미지는 지시성과 의미로부터 박리된 채, 고정되지 못하고 미끄러짐을 반복한다. 가령, 오민수의 <진돗개 하나> 연작을 친숙한 외모를 가진 군인을 먼저 보고 한국 근현대사의 사건을 대입하여 해석하려 들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군의 군복과 ‘덩게르크’, ‘카랑탕’ 등과 같은 표제가 해석을 방해한다. 오형근의 군복을 잘 갖춰 입은 <중간인> 연작의 군인들은 텅 빈 표정을 한 얼굴을 드러내며 국방부가 표방하는 강한 군인 이미지로 소비되길 거부한다.


오민수의 사진은 1인칭 슈팅(First-person shooter, 이하 FPS) 게임을 실행했던 경험과 군 복무 당시 기동훈련을 대신하여 전쟁 훈련형 시뮬레이션 프로그램(Battle Command Training Program, 이하 BCTP)인 워게임(Wargame)을 체험했던 경험이 충돌하면서 시작되었다. 그가 경험했던 두 프로그램은 사용되는 기관과 목적이 다를 뿐, 모두 실제 전쟁을 고증하여 재현한 가상의 전장이며, 조준경으로 겨눠진 세계를 바라보며 적을 상대한다. 실제로, 디지털 기술의 발전 이후 현대전의 양상이 디지털 원거리 통제 방식인 비인간적 ‘스마트’ 전쟁으로 전환되고, 언론을 통해 대중에 전달된 전쟁 이미지는 스마트 폭탄의 앞부분에 장착된 소형 카메라에 의해 포착되었는데, 촬영된 이미지는 FPS 게임 인터스페이스에서 목격할 수 있는 이미지와 흡사하다.2 오민수는 FPS 게임, 전쟁 훈련용 시뮬레이션 그리고 실제 전쟁 보도사진과 영상을 경험하면서 기이하게 반복되는 상황, 사태에 대한 불편한 느낌, 즉 언캐니(uncanny)한 감정을 느끼는 지점을 주목한다. 그의 시선을 쫓으면 전쟁 이미지들 사이에 묘한 역학관계가 드러나는데, 오민수의 사진은 이러한 맥락에서 제작되었다.


<진돗개 하나>는 전쟁 재현 동호회의 활동을 찍은 사진 연작이다. 전쟁 재현은 역사 재현(historical reenactment)의 한 종류로 특정 시대의 전투를 설정하여 이에 맞는 복장과 장비를 갖추고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살아있는 사람이 수행하는 일종의 역할극(role playing)이다.3 이러한 지점에서 오민수의 사진은 특정한 장면을 연출하는 타블로 형식(tableau form)의 사진으로 논의할 수 있다. 참여자들은 당시의 전쟁 보도사진과 기록물들을 참고하여 역사적 고증에 맞는 ‘대리적 프로필’을 만들고, 배우이자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로써 약 4시간의 긴 시간 동안 전투를 체험한다. 게임 안에서 키보드, 마우스 등과 같은 입력장치를 통해 체험하는 경험을 넘어 현실 안에서 1인칭 시점으로 가상의 적들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가장 많은 숫자의 플레이어가 등장하는 <카랑탕#3>(2020)을 살펴보면, 참여자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독일군에게 교통요충지였던 카랑탕(Carentan)에서 벌어졌던 전투를 재현하기 위해 실제 당시에 제작된 독일 군복과 장비의 아주 작고 정밀한 부분까지 갖추고 정해진 역할을 수행한다. 맥거핀(macguffin) 적인 요소로만 작용하는 장소와 모형 총기임을 명시하기 위해 총구 부분에 장착된 컬러 파츠(color parts)는 사진 속 장면이 연출된 것을 쉽게 알아차리게 하지만, <진돗개 하나 #3>, <진돗개 하나#4>(2020) 등과 같이 역할에 전복된 참여자의 표정을 확대한 흑백 사진들은 기이하고도 낯익은 두려움을 불러온다.


이처럼 작가는 취미의 소재로 전쟁이라는 대규모 살상행위를 게임, 영화 등으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반쯤 가짜’의 현실 속에서 군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을 촬영함으로써 전쟁을 유희적으로 소비하는 행태를 보여준다. 이 연극적 기록 속에서 전쟁의 공포와 고통은 즉물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일종의 연극적 핍진성으로 충만한 인물들의 행위가 ‘반쯤 진짜’를 만들어내게 된다. 다큐멘터리적 세밀함으로 재현된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전쟁을 이미지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 일종의 역할극을 통해 소비하는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다양한 시각적 장치들을 통해 관객의 몰입을 이끈다. 관객은 오민수의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끌어당김의 역동성을 통해 이미테이션 게임에 휘말리게 된다.


오민수의 사진이 군인의 외적인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여 전형적인 군인처럼 보이고자 하는 남성을 담아냈다면, 오형근 <중간인> 연작은 군인의 신분을 갖고 있지만 모호한 개인적 가치와 공식적인 군대의 임무 사이에 있는 혹은 있고자 하는 남성을 보여준다. <중간인>은 전작인 <아줌마>(1997), <화장소녀>(2005-2008) 등에서도 취했던 작업 방식과 같이 특정 집단의 시각적 공통성을 끄집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군대라는 집단적 조직 내부에 있는 병사들의 개별성을 드러냄으로써 관습적 이미지에 대해 비틀기를 시도한다.4 <중간인> 연작 중 전시장 입구 오른편에 있는 <조용한 사병>(2010)을 살펴보면, 군인 한 명이 단정히 군복을 갖춰 입고 쌓인 돌 위에 걸터앉아있다. 그의 뒤편에는 프레임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큰 장갑차가 놓여있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치 아무것도 응시하고 있지 않고, 다른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인다. 그의 시선과 축 늘어진 팔에서 느껴지는 무력감 그리고 초조한 듯 서로 만지작거리는 손끝은 묘한 불안감을 전달한다.     


군 초소 내부 공간에서 촬영한 듯한 <포탄과 병사>(2010)의 군인은 바로 옆에 있는 오민수의 <기관총을 들고있는 군인>(2021) 속 남성이 탁 트인 들판에서 군복과 장비를 갖추고 자신감에 찬 시선으로 렌즈를 직시한 것과 달리 포탄에 자리를 내어주고 왼쪽 신발 대에 몸을 기댄 채 텅 빈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조용한 사병>의 군인보다 비교적 렌즈를 정확하게 응시하지만, 몸을 얇은 철근으로 만들어진 신발 대에 기대어 휘어진 철근과 짓눌려 빨갛게 된 손의 연약함은 감출 수 없다. 사실상 <중간인> 연작은 고정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진이 아니라 청소년기를 갓 지난 20대 초의 나이에 2년 남짓 되는 군 복무 기간에 군대가 원하는 ‘우리’라는 집단성에 ‘나’를 넣으면서 생기는 갈등, 다시 말해, 겹겹이 쌓인 사실성의 층위를 드러내는 사진일지 모른다. 이처럼 오형근의 사진은 인물의 복장이나 신체 특성이 드러내는 사회문화적 표상을 정확히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관객이 그 기호에 갇힌 고정관념을 의심하게 만들도록 교란한다.


오민수와 오형근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군인 이미지를 선보이면서, 기존에 군인 이미지를 한국 사진사 안에서 표현했던 방식과 다른 작업 모델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작업은 불확실한 텍스트, 즉 “세상의 본질을 바라본 그들 자신의 반응의 본질”로 간주되며, 잠재적으로 관객의 해석에 따라 활성화되는 것으로 여겨진다.5 전쟁을 은연중에 내비치는 군인 이미지에 반대하는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주변 환경에 대해 관객이 자각하도록 한다. 물론 사회적 조건을 드러냈던 전통의 다큐멘터리 사진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태도로 왜곡된 이미지들을 복잡하게 만들고 새롭게 해석하도록 다시 재현하는 작업인 것이다.                                                      


1. 해방 이후 근현대미술사에서 군인 이미지는 한국 전쟁기 전후의 1950년대와 1960-70년대 군사정권기의 작업을 주로 다룬다. 이 시기의 군인은 주로 전투 중인 군대의 모습이나 영웅적 군인 이미지로 귀결되었다. 김영인, 「한국 동시대미술 속 군대 표상에서 드러나는 정치성: 푸코의 권력이론을 통한 박경근, 서도호, 오인환의 작품분석」, 『한국근현대미술사학』 40, 2020, p. 360.

2. 미국의 시각문화 이론가 윌리엄 미첼((William J. Mitchell)은 우리가 접하게 되는 전쟁 이미지들이란 “디지털적으로 처리된 냉담하고 비인간적인 파괴의 이미지들”이며, 이것은 이제 “비디오 게임”과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한 바 있다. William J. Mitchell, The Reconfigured Eye: Visual Truth in the Post-Photographic Era (Cambridge: The MIT Press, 1992), p. 13.

3. 한국의 리인액트먼트는 미국, 유럽 등과는 달리 크게 퍼져있지는 않으나 소수의 마니아를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로 장비를 구하기 상대적으로 수월한 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한국전쟁에 편중되어 있다. 박광순 「현대 대중과 역사: 역사를 소재로 한 영상매체와 ‘리인액트먼트(Reenactment Activity)’를 중심으로」, 『교육연구논총』 37(1), 2016, p. 27.

4. 송수정, 「현대사진의 전개, 매체적 실험과 시선의 다양성」, 『한국미술 1900-2020』, 국립현대미술관, 2021, p. 353.

5. 김선정, 「오형근과의 인터뷰」, 오형근 홈페이지, 2022.06.17, http://heinkuhnoh.com/text_kr/text04

http://virtualgallery.co.kr/artists/%EC%98%A4%EB%AF%BC%EC%8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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