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프로젝트 전시공간 여튼952/2021.09.22 - 12.15
아시아 현대미술을 배우는 수업에서 베트남 호치민에 있는 대안공간인 산 아트(Sàn Art)에서 큐레이터 겸 예술감독인 조 벗(Zoe Butt)의 “우정을 실천하기: 큐레이터로서 시간을 존중하는 것(Practicing Friendship: Respecting Time as a Curator)”을 읽은 적이 있다. 이글은 특정 작가와 작품을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조 벗이 큐레이터로서 자신이 추구하는 동시에 실천하고 있는 큐레토리얼 형태인 우정(Friendship)의 중요성을 살펴보는 글이다. 베트남 미술계와 그 바깥에 국제적인 예술 기관에서 활동하는 조 벗은 본 글에서 예술 기반 시설이 지속해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정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우정을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가 말하는 우정을 실천하는 방식은 시간을 들여서 관계를 쌓고 그 안에서 소통을 함으로써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큐레이터에게는 작품을 이해하는 것일 수도 있고 예술가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작품이 어떻게 보이는지 들어볼 수 있는 계기이다.
여러 방식으로 실천한 우정은 미학과 정치학이 만나는 지점에 있으면서 예술가들을 제한하려는 외부 권력에 도전하는 정치성을 갖는다. 예술가들이 자율적으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인 방법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처럼 베트남에서 우정을 실천하는 창의적인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생각을 유지하는 것에 더불어서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공간이 지역에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지역과 세계적인 의미 사이에 균형을 두어야한다고 언급한다. 베트남에서 더 좁혀진 지역예술계에서 일어나는 우정의 실천이 지역의 사회적 관계망에서 이루어 지지만 그 안에서 생산되는 작업은 지역과 세계적 의미를 아울러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조 벗은 자본주의 시스템과 국가 권력의 개입으로부터 예술 기반 시설이 자금과 공간의 결핍을 보충하고 혁신적인 시도를 이어가기 위해서 시간과 우정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나는 이글을 작년에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 차례 읽고, 여튼952를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녀의 주장이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동시대 미술에서 지역성과 우정을 강조함으로써 얻는 가치들에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시공간 운영을 하면서 다시 읽었을 때는 이 글이 새로 읽혔다. (지면의 많은 부분을 조 벗의 글을 설명하는 내용에 할애한 이유이다) 텍스트와 참고자료는 그대로였고 추가된 것은 작가들과 공유했던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공간을 찾고 정비하기 위해 보낸 시간 동안 물건을 옮기거나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작가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나는 그들의 태도, 신념, 습관 등을 보게 되었고, 이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해의 기반이 되어 전시와 글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와 공간을 준비하며 뱉은 말들이 기획의 시작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여튼952에서 2번의 전시와 8번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의정부에서 활동하거나 외부에서부터 공간을 찾아온 다수의 작가를 만났다. 이전에는 의정부에 거주하는 작가는 있었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거나 의정부에서 활동하더라도 수면 위에 올라오지 않아서 지역 내에서 작가와 관계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공간을 중심으로 작가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이들은 하나같이 지역 안에서 이들의 작업의 방향을 함께 논의할 다른 작가들과의 네트워킹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누군가는 짧은 시간 기획단의 모든 역량을 쏟았던 여튼952가 당장 지역예술계의 상황에 크게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평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튼952는 시작점일 뿐이다. 작가와 기획자가 계속해서 필요성을 인지하고 서로 우정의 실천을 이어나갈 때, 지역 안에서 예술을 하는 것이 가치를 갖게 될 것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