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지형도 /에세이
Aber’로 시작되는 남편의 말, 그건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다.논리와 감정, 문화와 교육이 엇갈리는 한독 커플의 일상 속에서나는 어느 날, 이 단어에 이름을 붙였다. ‘Aber Prinzip.’”
남편과 말다툼이 길어질 때면, 나는 결국 이 말을 꺼낸다.
"됐고, 그놈의 Aber Prinzip 그만 좀 해."
처음엔 그냥 짜증에서 시작된 말이었다.
독일인 남편의 대화 방식은 늘 논리와 근거, 그리고 무엇보다 '반론'으로 구성돼 있었다. 내가 "이젠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어"라며 마음을 꺼내면, 그의 입에서 곧장 나오는 건 한 단어였다. "Aber…" 그리고는 끝없는 설명과 반박, 새로운 근거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 'Aber' 하나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길을 잃는다. 감정은 납작해지고, 대화는 토론으로 변한다. 피로하고, 외롭고, 답답하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 감정의 선을 긋듯이 외친다. "Aber Prinzip! 너희 독일인들의 습관이야."
남편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자기는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다고. 선생님은 언제나 말했다고 한다. "좋은 의견이지만, 다른 관점도 생각해봐야지. Aber…" 그러면서 자연스레, 반박하는 법을, 자기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는 법을 익혔다고 했다. 그건 독일식 교육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Aber Prinzip은 단순한 말버릇이 아니라, 그들이 자라면서 체화한 사고 방식이었다. 독일 사회는 토론과 논쟁을 통해 의견을 세우고, 타인의 의견을 의심하고, 근거로 반박하는 것이 곧 성숙한 대화라 믿는다. 반면, 나는 한국에서 자랐다. 반박은 무례로 받아들여지고, 질문은 회의적 태도로 보였고, 침묵은 배려의 표현이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박사 학위가 있다.
그는 물리학 박사이고, 나는 법학 박사다. 그는 실증적 데이터와 수학적 모델로 세상을 설명하려 하고, 나는 논리와 규범, 정당성으로 사안을 바라본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정확한 앎'을 추구해왔다. 그래서 더더욱, 서로가 가진 논리의 세계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이 '앎에 대한 확신'은 종종 우리 대화를 끌고 가다가, 결국엔 감정을 소외시키고 만다. 서로가 틀렸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내 말이 더 사실에 가깝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피곤한 하루 끝,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따스함보다 반박이 먼저 나올 때, 나는 다시 이 말을 꺼낸다.
"그놈의 Aber Prinzip."
이 이야기는 남편이 한독 관계자들이 참석한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에서 절정에 달했다.
한국 측이 계획을 제안하면 독일 측은 매번 "Aber…"로 이어지는 반론을 덧붙였다. 미팅은 늘어졌고, 한국인들은 지치고 말이 줄었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제 아내가 저한테 늘 그래요. '그놈의 Aber Prinzip!' 이게 독일인의 못된 습관이라고요."
순간 회의장은 얼어붙었고, 한국 측은 피식 웃었다. '내가 이겼다'는 듯한 묘한 승리감이 감돌았고, 독일 측은 표정이 굳었다. 남편은 분위기를 풀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 한마디가 양측의 문화적 긴장을 드러내는 촉매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순간, 서로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었던 진짜 소통의 계기였다. 독일인들의 'Aber'는 그들에겐 학습된 논리의 구조였고, 한국인들의 '침묵'은 어쩌면 타인의 감정을 읽고 배려하는 문화의 산물이었다.
'Aber Prinzip'은 결국 단순한 대화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문화와 교육, 그리고 '앎'에 대한 태도가 만들어낸 언어적 표현이다. 감정을 토대로 대화를 여는 나와, 논리를 토대로 대화를 확장하는 남편. 우리 둘 다 옳았지만, 동시에 둘 다 틀렸던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싸운다. 그리고 그 끝엔 늘 이 말이 따라온다.
"됐어, 그놈의 Aber Prinzip."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그 말 속엔 내 감정뿐 아니라, 문화와 역사, 그리고 우리가 살아온 앎의 방식이 함께 들어 있다는 것을.
독일과 한국의 대화 방식은 단지 말투의 차이가 아니다.
그 뿌리는 교육의 목적, 권위에 대한 인식, 사회 구조에까지 깊게 닿아 있다. 독일의 교육은 어린 시절부터 자율성과 독립적인 사고를 장려하며, 자신의 주장을 타인 앞에서 논리적으로 방어하는 것을 훈련한다. 권위와 맞서는 것이 금기가 아니라 '성숙함의 표식'으로 간주되기에, 반박은 무례가 아니라 책임 있는 참여의 증거다.
반면, 한국의 교육은 오랫동안 집단 조화와 질서를 강조해왔다.
교사나 상급자의 말에 의문을 품는 것은 불경스럽고, 반론은 대체로 침묵 속에 묻혔다. 권위는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절대적인 선으로 존재해왔고, 개인의 목소리보다는 공동체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것이 우선이었다.
결국 'Aber Prinzip'은 문화의 문제이자 구조의 반영이며, 우리가 무엇을 대화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맞고 틀림'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어떻게 함께 말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Aber' 다음에 무엇을 말할지 조심스럽게 고민하게 된다.
대화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독일과 한국의 대화 방식은 단지 말투의 차이가 아니다.
그 뿌리는 교육, 권위 인식, 사회 구조에 깊게 닿아 있다.
왜 독일인은 반박에 익숙하고, 한국인은 배려 속에 침묵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은, 단지 문화 이해가 아니라 인간 이해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