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 방문하고 싶은 곳
글 그림 Pat Hutchins
1968
Random House
안녕하세요, 그림책 여행자 여러분!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할 여행지는 추천을 받는 그림책 중 하나인 <Rosie's Walk (한국어 역 로지의 산책)>입니다. 이 책 또한 오랜 시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온 고전 중 하나로 글과 그림의 서술방식이 독특해 그림책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책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여러 번 읽어도 재미있는 책으로서 이 책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어떠한 면이 이 책의 매력을 더 해주는지 페이지 별 서술방식과 더불어 전체의 구성을 통해서 살펴보지요.
1. 내용의 단위: 글과 그림
따뜻한 난색으로 그려진 그림 속 로지와 여우가 큼지막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로지가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 내용입니다. 모든 페이지에서 로지는 다른 생각을 하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갑니다. 그러나 뒤에는 그를 노리는 여우가 살금살금 뒤따라 오고 있지요. 같은 모습, 같은 표정으로 걸어가는 로지와 다르게 여우의 행동은 매우 다양하고 역동적입니다. 여우는 로지를 잡아먹으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며 결국 벌에게 쫓겨 도망갑니다.
이 책의 재밌는 지점은 한 줄 뿐인 글입니다. 여러 페이지에 걸쳐 나누어져 있어 눈치채기 어렵지만 "Roise the hen went for a walk across the yard around the pond over the haycock past the mill through the fence under the beehives and got back in time for dinner (암탉 로지는 마당을 건너 연못을 돌아 볏짚을 넘고 방앗간을 지나 담장을 통과해 벌통 아래를 지나 저녁 시간에 맞추어 산책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단 한 줄이지요. 무미건조하게까지 느껴질 만큼 이 글은 로지가 지나가는 장소만을 서술해 여우가 등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그림에서는 다양한 표정과 동작으로 사냥에 실패하는 여우의 모습을 보여주지요.
작가는 한 장소 당 두 페이지의 분량을 두어 한 페이지엔 여우가 숨어 있고, 다음 페이지에는 여우가 사냥을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두 페이지를 번갈아가며 살펴보면 이런 우연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로지가 지나간 장면에 배경처럼 있던 요소들로 인해 실패를 합니다. 이런 재미난 그림 읽기 속, 독자들은 빨리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여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 집니다. 그리고는 로지만이 눈치 채지 못한 여우의 행동을 페이지에 함께 등장하는 다른 동물의 마음이 되어 지켜보기도 하고 큰소리로 알려주고 싶기도 하지요. 그러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로지의 모습을 통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됩니다. 심플한 글과 대비된 제삼자의 시각으로 그려진 그림, 그 속의 긴장감과 재미가 이 책을 오랫동안 사랑받게 한 첫 번째 매력입니다.
2. 개연성 있는 구성: 로지의 산책 코스
이 재밌는 일들이 벌어지는 곳들이 로지가 우연히 지나친 곳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이 일이 일어나는 곳들에 대한 힌트가 한 곳에 모여 있습니다. 바로 이 책의 타이틀 페이지입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단순히 로지가 살고 있는 농가의 모습이라고 넘어가기 쉽지만 책을 여러 번 읽고 나면 이 그림이 내용에 등장한 모든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마주쳤던 동물들과 여우가 넘어진 요소들이 곳곳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됩니다.
열려있는 닭장, 멀리 보이는 볏짚, 묶여있는 염소, 풍차 날개가 보이는 방앗간. 가운데는 개구리가 있던 연못과 새가 앉아있던 버드나무가 보입니다. 그 옆에는 헛간이 있어 내용에 있었던 것처럼 농기구가 비스듬히 벽에 놓여있네요. 그리고 펜스 옆엔 여우가 넘어진 수레, 여우를 도망하게 한 벌들이 사는 벌집도 보입니다. 내용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는 로지의 산책 코스를 보여주는 지도가 되지요. 그리고 각 자리에 놓인 이 요소들은 마치 로지를 구해주기 위해 숨어 있는 친구들 같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제는 내용을 읽으면서 이전 페이지가 아닌 타이틀 페이지로 돌아와 로지의 위치가 어디인지 어떤 길로 산책을 하고 있는 지를 상상하고, 뒤로 보이는 배경들을 또한 예의 주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도 속 각 장소와 시선이 맞아떨어지게 책 전체를 구성한 작가의 치밀함에 무릎을 탁 칩니다.
오늘의 특별 여행지는 어떠셨나요? 한 번 여행했던 그림책 여행지를 다시 방문하는 것이 알고 있는 내용을 본다는 지루함이 아니라 이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찾고, 새로운 연결고리로 작가의 숨은 의도를 탐험하는 시간일 수도 있겠지요. <Rosie's Walk> 뿐만 아니라 저희가 여행했던 열아홉 곳도 다시 방문하신다면 색다른 재미를 찾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