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 소희> 후기
다음 소희(2023)
나는 사람들이 죽을 힘을 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음 소희>는 특성화 고등학교의 학생이 격무와 폭언에 시달리다 자살했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제목은 <다음 소희>, 소희 다음의 소희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어졌다.
시종일관 버석하고 건조하게, 과장 없이 고요한 영화는 그래서 더 힘들고 현실적이다.
며칠 전 24살의 초등학교 교사가 자살했다. 다음 소희는 초등학교에서, 공사 현장에서, 지하철역에서, 공장에서, 콜센터에서 계속해서 컨베이어 벨트 위 부품처럼 등장하고 있다. 소희의 자리를 채울 다음 소희들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최근의 사건을 보며 교사들은 알 것이다. 신규 교사에게 일명 '짬처리'하는 것, 자기보다 나이 대여섯살에서 일고여덝살 많은 학부모가 어린 자기한테 말만 선생님 선생님 붙여가며 넣는 민원들.
사회에서 만나면 사실 그들은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 동호회에서 만난다면 그냥 언니 형 오빠인데 학교 안과 밖에서 만나면 말하는 것부터 달라진다. 다음 소희에서 그에게 폭언과 희롱을 던진 인간들은 멀쩡히 일하고 고민하고 밥 먹고 잘 자고 어쩌면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았을지도 모른다.
요즘 MZ들의 이미지로는 항상 이상하고 나사빠지고 영악하고 사회생활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비상식인 정도의 이미지다.
그러나 진짜 MZ세대는 일터에서 죽어나가는데, SNL에서는 어떤 모습인지 보라. 유투브 댓글, 네이버 기사의 실업급여 타서 편하게 놀고 먹는 세대라는 비방을 보라.
영화에서 팀장이 자살하고도 새로운 팀장은 일하기를 종용하는데 그게 너무 힘 빠지고 파리바게트 공장 사건을, 초등학교 교사를 괴롭히던 학부모를 생각나게 했다.
책 '보건교사 안은영'에는 그런 구절이 나온다.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져도 괜찮아요. 그게 이번만이라도 괜찮아요. 도망칩시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칩시다. 나중에 다시 어떻게든 하면 될 거예요.'
하지만 그만 두고 도망치는 건 현실적으로 그렇게 쉽지 않다.
다음 소희 속에는 이미 그런 대사가 나온다. 그만두는 게 쉽느냐고,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
사실 일그만둬도 돼.네가 젤 중요해!라는 말도 당시에 몰린 사람에겐 사치처럼 보이고 선택지로도 안 보일 수 있단 거 안다. 이거 하려고 내가 얼마나 애썼는데.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꾸역꾸역 버텨보는 마음도 잘 안다. 모두가 일을 단번에 그만 둘 수 있는 사정도 아니고 일 그만두는 것도 업계 나가는 것도 큰 용기다.
막막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황에 여태 아주 열심히 이것만 보고 달려왔건만. 그래도 진짜 죽을 것 같으면 친구들이 도망쳤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부디 죽을 힘을 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열심히, 아주 열심히 하되 지하철에서 회사 근처 역에 정차한다는 방송이 나올 때마다 속이 울렁거리고 죽고 싶다면,
사무실 문앞에 서는데 손이 떨리면
도망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고생의 낭비>에 그런 대사가 나온다. 동물들은 살기 위해 도망치는데 왜 인간은 도망치면 안되느냐고.
사고쳐놓고 잠수 타고 회사 가지 않아도 괜찮아 곰돌이푸:) 이런 뜻이 아니다. 할일은 해야 한다.
그렇지만 진짜 죽을 것 같으면 그만두고 다른 걸 해도 된다. 사람에겐 에.에.올처럼 오천만가지의 유니버스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오천만가지의 가능성이니까
정말 죽을 것 같으면 쿵푸 기술 다운받던 양자경처럼 다른 길을 가도 된다. 해보니까 되긴 된다.
심지어 날도 좋고 바람도 좋은 날에도 회사가 병들게 하고 죽고 싶게 하면 도망쳐야 한다.
무엇보다 죽음 자체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소희도, 죽은 선생님 말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있는 인간들을 탓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