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91년생 MZ세대. 나를 위한 flex!! 를 외치던 다른 MZ세대들의 구호는 개나 줘버리고, 2020년 6월, 딱 서른이 되던 나이에 호기롭게 결혼했다. 20년 통계청 기준 남자 초혼연령이 만 나이 33.23세였으니 남자치고는 상당히 빠른 편에 속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상연하 커플이나, 강약 조절 실패로 꼬물이를 배에 품고 빨리 결혼한 케이스 외에는 친한 친구들 중 내가 첫 번째에 해당했으니 통계가 얼추 맞는 것 같다.
세월이 변해가면서 남편 얼굴을 결혼식 당일날 봤다는 전설적인 결혼식도, 북어로 새신랑 발바닥을 오지게(?) 팼다는 결혼식 풍토도 모두 다 지나갔다. 그럼 요즘은 어떨까? 휴대폰 스크린이 반으로 접히는 시대에 결혼 풍토도 뒤집힐 정도로 변하는 게 맞지 않은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면, 또는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나이가 좀 있는 편이라면, MZ세대의 3기 결혼식 졸업생 정도 되는 필자가 알려줄 테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드라마 가문의 영광에서 새신랑 발바닥을 신나게 패고 있다
치킨도 반반인데, 결혼도 반반이다
거의 국룰처럼 여겨지던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이야기는 이제 현실보다 드라마에만 나오는 초상위 계층의 컨셉이 되었다. 대신 남녀가 그동안 벌어들인 모두 모은 돈을 합치고, 양가 부모님께도 여건이 되는 만큼만 적당히 비슷한 금액을 결혼자금으로 받는 것이 대부분의 추세가 아닌가 싶다. 왜 남자는 그렇게 해야 되고, 왜 여자는 그렇게 해야 돼?라는 레지스탕스의 산출물이라기보다 세상의 현실과 트렌드가 빚어낸 자연스러운 현상에 가깝다.
이런 트렌드가 탄생한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첫 번째로는 천장을 뚫고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집값을 꼽지 않을 수가 없다. 최근 몇 년간 집값은 신혼부부에게 분노의 제1대상이 되고 있다. 혹여 누군가 결혼한다 하면, 필수적으로 자가/전세 체크리스트에 이어 그럼 동네는 어디니?라고 훅 들어오곤 하는데 집이 있다면야 그래도 내심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지만, 전세라면 전세에 산다는 그 자체가 뭔가 모르게 의기소침하게 한다. 그만큼 집 자체가 그 결혼에 대한 예상치 못한 의미부여가 되고 있다. 꼭 집을 사지 않더라도, 전셋값도 어마어마 하니 한숨이 푹푹 절로 나온다. 어쩌다 남자가 집을 해온다는 전설의 케이스가 있으면 그 일대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진다. 유학 갔을 때 우연히 일론 머스크 옆집에 살아서 테슬라에 초기 투자를 했다던가, 개를 좋아해서 시바이누 코인에 투자를 했는데 대박이 났다던가 하는 진부한 썰은 매번 절로 나오게 되어있다. 아무튼 어린 정신 나간 집값이 남자가 집을 해온다기 보단 열심히 살다가 둘이 힘을 합쳐 마련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변하게 하였다.
시바이누 코인은 1년에 9억 배 올랐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일을 안 하는 젊은 여성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여성인력풀이 방대해졌고, 그에 따라 여성의 경제력도 남성과 대등해져서 반반결혼이 가능해진 것이다. 공대생 입장에서 보면 IT의 경우야 원래 여성의 진출이 워낙 활발했고, 제조업은 좀 뒤처지긴 했으나 반도체 같은 경우도 신입 여성비율이 30-40% 정도 된다고 들었다. (난 6년 전 자동차 관련 기업에 입사를 했는데 약 15%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애초에 공대생 비율이 남자가 더 많은 게 일반적이니 취업 결과에서 저런 비율이 나온다는 건, 양질의 일자리가 남녀에게 똑같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도 결혼하기 전 아내가 나보다 더 돈을 많이 모았는데, 눈물 날 정도로 정말 고마웠다. 현재 그 고마움은 화장실 청소와 음식물쓰레기/분리수거를 평생 하는 것으로 갚고 있다.
특히 같은 나이라면, 여성들이 보통 일찍 취업을 하게 되어 돈을 더 많이 모았을 가능성이 높고, 상대적으로 코인이나 주식에 충동적으로 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돈을 잃었을 확률이 더 낮다. 이런 결과는 결혼 시에 여성이 훨씬 더 당당해질 수 있고 남자와 여자의 결혼에 대한 공동투자와 공동 권리를 가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자산의 격차가 심화되는 요즘은 노예처럼 살아도 좋으니 돈 많은 여자에게 장가가고 싶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많이 나온다. 그만큼 남자/여자가 갖고 있었던 기존의 역할보다는 자본주의 시대에 맞게 결혼의 더 많은 투자자(?)에게 더 많은 권리가 부여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정말 반반결혼을 한다면, 결혼을 하고 나서도 모든 권리가 반반이 된다는 것을 깨닫자. 그리고 그 권리는 내 권리를 찾으려고 할 때보다는 서로의 권리를 존중해줄 때가 더 빛난다.
사실 반반치킨도 처갓집 양념치킨이 대세
결혼식.zip 결혼식도 압축된다
동요 중 예식장은 용궁 예식장~ 주례는 문어 박사~라는 가사를 기억하는가? 머리에 예민해지는 요즘 문어 박사라는 말이 왠지 모르게 슬퍼지지만, 이제 더 이상 문어 박사님을 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주례를 하는 결혼식이 흔하지 않다기보다 사실상 거의 없어졌다고 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듣기만 해도 잠 오는 주례뿐만이랴? 청첩장 문화도, 폐백도 변하였다. 그야말로 실속 있는 결혼식이 대세가 되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주례는 결혼식 필수코스 중 하나였다. 아는 책임님 중 한 명은 어떤 분을 대행으로 구해서 친한 교수님과 제자 컨셉을 만들어서 했다고 하는데, 그 유창스러움과 능청스러움이 대행 값어치를 뛰어넘는 결과물이어서 연기당일(?) 정말 감동받았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듣고 엄청 웃었는데, 아무튼 어떻게든 주례를 구해서 해야 했던 걸 보면 우리는 주례에 진지한 민족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준비하는 사람만 진심이고, 하객으로 되는 순간 엄청 따분해했다.
요즘에는 주례보다는 양가 부모님이나 가족이 나와서 각자 축하의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 트렌드이다. 사실 그게 주례보다 훨씬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 아주 잘 바뀐 문화라고 생각한다. 들은 이야기지만, 시집보내는 딸에게 친정엄마가 시를 써서 낭독한 결혼식에 하객들이 울고 난리가 나서 그 결혼식장이 홍수가 났다고 한다. 그 시를 듣지 않아도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울컥해지면서, 그런 순서야 말로 결혼식의 참된 행사이지 않나 싶다. 나 같은 경우에는 작은누나가 나에 대한 즉석 축하인사를 해줬는데, 하객들에게 인상이 깊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내 이름으로 삼행시를 한건 아직도 손발이 오그라든다.)
동요 속 주례는 문어 아저씨인데 문어 박사라고 학력위조했다는 썰이 있다
폐백은 내가 2년 전쯤 결혼식 준비할 때 결혼식 직원에 의해 한다/안한다가 50:50이라고 들었으니, 지금은 안 한다의 비율이 훨씬 더 많아졌을 것이다. 일단 폐백 자체를 한번 하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깨진다. 대여라 할지라도 신랑신부 한복은 기본이고, 폐백 세트는 백만 원이 우습다. 심지어는 도와주는 이모님 돈도 드려야 된다. 이건 신혼부부에게 좋은 것이겠지만, 친척들은 폐백 할 때 절값으로 한 봉투 챙겨줘야 하니 머리가 얼마나 아플까? 안 봐도 비디오다. 모두가 패배자요, 진정한 승리자는 관련 업체들이다.
특히 폐백은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하객들이 식사를 하다가 기다리다 지쳐 가는 경우가 많다. 식이 끝난 후 오신 분들께 테이블마다 찾아가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이 관례인데 오히려 하객들을 많이 기다리게 하다가 민폐를 끼칠 수가 있다. 폐백을 한다면 최대한 빨리 행사를 마무리하고 나오는 게 좋겠다. 폐백이 좋다/나쁘다고 판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문화가 변했다. 예전에는 결혼식이 동네잔치에 가까워서 그날 하루 한껏 하객들이 만끽하고 여유를 즐길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각자 바쁜 삶을 지내고 있기 때문에 예전만큼의 많은 여유가 없다.
요즘 하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결혼식 1위는 빨리 끝나는 결혼식이다. 그만큼 불필요한 것을 없애고 의미 있는 결혼식을 추구한다. 어떤 친구 부부는 결혼식장에서 준비한 공연을 보여주기도 했고, 또 미리 부모님께 편지를 적어서 영상으로 띄운 사람도 있었다. 문어 박사님이 으레 하는 행복하게 잘 살고, 싸우지 마라. 를 5분 동안 듣는 것보다는 훨씬 더 행복한 결혼식이 아닐까?
방송도 그렇고 일반 사회에서도 그렇고 MZ라는 말을 요즘 정말 많이 듣는다. 때론 말만 하면 MZ라는 명분 하에 때에 따라 선을 넘는다고 욕을 먹기도 하지만, 수많은 장애물을 이겨내고 결혼 자체를 참 효율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아주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다.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자신의 권리와 개성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요즘 MZ! 더 해주고 싶은 말이 많지만 MZ 답게 여기까지 끊고 다음 편에서 계속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