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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도 bando Mar 16. 2023

일본이 가전 구독을 시작한 이유

일본의 구독 시장은 미래 세대를 위한 터?

넷플릭스, 포토샵, 밀리의 서재 이 셋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구독 서비스다.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서비스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웬만해선 구독제 없는 서비스를 찾기 힘들다.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 등 제품력이 쟁쟁한 소프트웨어 회사들을 필두로 전개된 구독 서비스 사업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IT 업계에서 유행하고 있다. 최초에는 체험판 사용자들을 유료 고객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멤버십 형태의 이미지가 강했으나, 최근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정액제 형태로 가전을 빌려주는 구독 서비스도 탄생했다.


통상 '구독'이라 하면 정해진 날에 돈을 지불하거나, 비교적 이동이 쉬운 물품 또는 비실물 형태의 서비스를 정기 제공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데 가전을 구독 아이템으로 삼다니, 그것도 보수적인 나라에서? 왜인지 생소하다. 일본에는 몇 가지 가전 구독 서비스 어플이 존재하는데, 이들이 제공한 주요 아이템은 ▲TV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그리고 ▲침대이다. 하나같이 판매 금액이 비교적 저렴하지 않고 크기도 큼직한 아이들이다. 뭐든 작고 간편한 걸 선호하는 일본에서 과연 이 제품군들에 대한 구독 사업이 먹힐까? 한번 알아보자. 


- 왜 '가전 구독'일까?

GenZ세대를 위한 일본 업계의 전략?

일본에 가전 구독제가 도입된 배경을 알려면, 우선 일본의 가전 시장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2020년 일본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COVID-19의 영향을 받으면서,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서만 머무는 이른바 '스고모리(巣ごもり)'라는 문화가 생겨났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히키코모리와 비슷한 말인데, 내 안에서 히키코모리의 이미지는 취업, 학업을 하지 않고 사회생활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사람들인 반면, 스고모리는 그저 집에만 있는 일반인이라는 느낌이다.


여하튼 이 '스고모리'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평소보다 방 내부 인테리어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겨났다. 이를 테면 직장에 가느라 대충 설거지거리만 던져놓고 갔던 싱크대가 어느 순간 어수선해 보인다거나, 잠 잘 곳만 마련해 둔 침실이 허전해 보인다던가 이런 경우겠다. 또, 한국처럼 재택근무 인구가 늘어나자 주방 가전류의 수요가 단숨에 증가했다. 이렇게 팬데믹 기간 동안 일본 가전 업계는 호황을 누리게 되었는데, 도대체 왜 어떤 연유로 구독 시장에도 눈독을 들이게 되었을까?  


가전은 재구매율이 낮은 아이템이다. 한번 사면 최장 5년까지도 쓸 수 있기 때문에 가전 회사들은 시즌마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기획전을 열어서 어떻게든 사람들이 가전을 사게끔 만든다. 그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간만에 찾아온 피크 기간도 금방 지나갈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물론, 가전 구독제라는 사업을 따로 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이 업계의 호황이 언제까지고 지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구독제'가 제2의 대안이 된 것이다. 


불안의 근원은 어디일까. 여기에는 반도체 공급난의 영향이 한 몫했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학교, 직장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활동이 언택트로 대체되었는데 이때부터 증가한 반도체 수요는 반도체가 적용되는 모든 산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양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적 비용, 그동안 메꿔야 하는 금전적 비용을 커버하려면 기존에 있던 아이템으로 구독 장사를 하는 것도 이상한 발상은 아니다. 


두 번째로는 다음 세대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라고도 볼 수 있겠다. 현재 일본 시장에서 가전을 소비하는 주 연령층은 40~50대에 집중되어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지금의 20대, 30대가 시장에 나올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위한 공략법으로 '구독제'를 선택한 셈이다. 2022년에 일본 소비자청에서 10대, 2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소비 행동 설문 조사를 실시했는데 일본 청년들이 '구매를 검토할 때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 중시하는 것' 3가지가 ▲SNS 후기 ▲지인 후기, 그리고 ▲공식 사이트였다. 다시 말하면, 미래의 일본 가전 소비자들은 상품 페이지에 드러난 디자인이나 가격만을 보고 구매하지 않고, 사용감이 검증된 뒤에야 구매를 결심한다는 뜻이다. 이는 국내에서도 유행 중인 '사용자 경험', '고객 체험형 XXX'와도 연결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일본 가전 업계가 '체험'의 장을 마련하는 구독 플랫폼에 주목하는 근거가 되겠다. 


- 가전 구독 플랫폼 리스트 

그렇다면 현재 일본에서 가전 구독을 제공하고 있는 곳은 어디가 있을까? 사용자 성향별로 아래와 같이 나열해 보았다.

(인용 출처: https://www.cityclubonline.com/subscription-hikaku/)


< 마음에 드는 가전 (소형가전, 미용가전)을 구입하고 싶을 때 > 

subsclife

alicestyle

airRoom

에어 쿠로 몰


< 생활가전, 대형가전을 이용하고 싶을 때 > 

subsclife

CLAS (쿠라스)

airRoom

에어 쿠로 몰


이렇게 보니 CLAS는 유저들에게 대여용으로만 제품을 제공해 주고, 판매는 하지 않나 보다. 참고로 (다음 섹션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본 글에서 말하는 구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렌탈과는 다르다. 렌탈은 일시불로 살 수 있는 금액을 일정 기간으로 나누어 정기적으로 지불하는 반면, 구독제는 실제 판매 금액과 별개로 유저가 매달 정액 요금을 내고 제품을 이용하하는 제도이다. 그래서 서비스를 이용하기 전 장단기를 잘 따져보고 이용할 필요가 있다. 


- 가전 구독 시장 현황

시장 규모 '2023년 기준 1조 1,021억 엔'
2018년에 태어난 기업 CLAS의 성장

현재 일본 구독 시장 자체의 규모는 2023년을 기준으로 1조 1,021억 엔 (한화 약 12조 원)에 달한다. 물론 가전 외 구독 사업 포함이다. 일본 가전 구독을 치면 검색 결과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기업 중 하나가 'CLAS'다. CLAS는 월 440엔 (한화 4,364원)으로 이용 기간 제한 없이 가구와 가전을 이용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 플랫폼이다. 개인 고객은 물론 B2B 법인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비전은 '변화에 대응하는 최적의 공간'과 '물건을 버리지 않는 사회 만들기'에 있다. 중고 가전이든 신형 가전이든 버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돌려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사업 아이템과 비전은 맞닿아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유저가 구독한 가전에 대해서 반납 또는 교환을 할 때에 수수료를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입 금액이 높음에 틀림없는 가전을 사업 아이템으로 두면서, 구독 수수료 외 별도의 금액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게 신기하다. 수익 구조는 당사자만이 알겠지만, 여하튼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도 이들은 전년 대비 300%만큼 성장하고, 22년 10월 기준으로는 개인 고객 가입 유저 수만 약 18만 명에 달한다. 여타 SNS가 부러울 것 없는 규모이다. 


물론 모든 플랫폼이 반납 및 교환 수수료를 떼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에 따라 신형 가전, 중고 가전이 뒤섞인 곳도 있고, 설치나 철거를 할 때 설치업자가 별도로 수수료를 떼어가는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는 배달 수수료도 가져갈 때도 있다. 플랫폼마다, 빌리는 제품마다 다 상이하니 가전 구독 회사라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수익 시스템을 가지고 있진 않을 것이다. 


- 구독 vs 렌탈, 어느 쪽이 더 나을까?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 가전 구독 시장이 존재한다고는 하나, 과연 이 시장이 호평으로만 가득한 시장일까? 구독제는 앞서 말한 렌탈제와 비교했을 때 장단점이 확실히 보인다. 대표적인 예시로, 매달 정해진 이용료만 내고 제품을 빌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사용할 계획이 있는 경우 손해가 더 크다. 아래는 'Rentio'라는 가전 렌탈 회사 CEO 미와 켄지오의 인터뷰를 일부 인용한 내용이다. 그의 인터뷰를 끝으로 구독제를 어떤 사업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깊게 고민해 봐야겠다.  


" 구독과 렌탈의 차이는 크게 2가지, 지불 방법과 기간에 있습니다. 구독은 월 정액이 일률적이고 고정적이며, 반영구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게 주류이죠. 이에 반해 렌탈은 빌려가는 제품에 따라 금액이 상이해서, 니즈에 따라 대여 기간을 바꿀 수 있어요. 

구독의 경우 한 가지의 서비스를 길게 쓰면서 수익화를 하는데, 많은 제품을 취급할 경우 회전율이 나빠졌을 때 (돈을) 벌기가 어려워요. 제품으로 구독을 하려고 하면 고가 제품들만 (사람들이) 빌려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회전율이 나빠진답니다. 우리 회사는 렌탈로 회전율을 높이고 있기 때문에, 상품 관리 시스템을 자사 개발했고, 카메라 1개 1개가 얼마나 이익을 냈는지도 보고 있습니다. 표시 장소를 바꾸거나 렌탈료를 내리면서 구형 모델이라도 재고가 소화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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