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는 흑과 백 사이에서 명징하지 않은 것의 대명사다. 불분명하다는 걸 다르게 생각해 보면 아직 설명되지 않은 선명한 무언가를 품고 있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이제 그레이는 본연의 것을 보여준다. 콘크리트로 건축물의 골조를 잡고 그것을 노출하는 방식으로 쓰임이 달라지면서 생겨난 감각의 변화다. 단단한 뼈대는 시작이자 근본이다.
회색 공간에 발을 디디면 본연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회색의 외관, 철의 육중한 두께감, 콘크리트의 단단함, 천장의 높이감. 이러한 시각적 자극은 보는 이에게 재료 자체의 힘을 전달한다. 동시에 콘크리트와 철이 얽히면서 만들어내는 감각이 오묘한 음악과 섞이면서 우리 안의 몽환성을 자극한다. 그것이 어떤 미래적 순간이라는 걸 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알아차릴 수 있다.
쓸모에 천착해온 바이널씨를 오롯이 담은 공간은 의미 없는 화려함을 줄여 가장 필요한 것으로만 채워졌다. 의도된 배제를 통해 공간은 그 쓸모를 극대화한다. 루프탑과 베이스먼트 카페 공간은 일과 쉼의 분명한 공간적 구분으로 심리적 안정감마저 전달한다. 오피스 내에서도 의도적으로 탕비실을 중심에 놓고 공간을 디자인했다. 일과 쉼을 구분하기 쉽지 않은 오피스 공간이 의도된 배제를 통해 안정감으로 환원되도록 말이다.
색도 마찬가지다. 시각을 자극하는 색을 의도적으로 최소화해 모노톤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우리는 이 공간에서 색채를 띤 건 사람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경험적 움직임이 디지털 프로덕트의 근본, 가장 쓸모 있는 그것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도.
콘크리트 골조 위에 정연하게 정리된 마감 라인처럼 바이널씨의 시간은 정돈된 형태를 완성해가고 있다. 미래의 어느 순간에 우리를 데려다 놓은 듯한 이 공간은 지금의 우리에게 쓸모에 대해 되묻는다. 그리고 본연의 재료로 구성된 공간이 그 답을 제시한다. 가장 본질적인 것, 화려함이 배제된 그것이야 말로 바이널씨가 말하는 쓸모 있음에 가깝다는 것을 말이다.
사진
TIME OF BLUE - 정동욱
YKH Associ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