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글나글 Jul 23. 2021

30대인 지금이 좋지만, 마흔은 왠지 두려워

내가 마흔이 된다니..? 내가... 내가 마흔이라니??


시간 참 빠르다, 세월 무섭게 간다.

해가 바뀔 때마다, 한 해의 반 정도가 흘렀을 때마다 흔히들 하는 말이다.


"시간 진짜... 어이없이 빠르다! 차함나”

"뭐 벌써..?! 아, 세월 겁나 무섭게도 가네!!"


30대가 된 나와 친구들은 이제 걸쭉한 영혼이 눌러 담긴 어조로 어느새 이 나이를 먹게 한 시간과 세월에 놀라곤 한다. 마치 욕처럼 들리기도 할 테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내 나이가 좋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나이를 먹으면서 나름 마음에 드는 인간으로 영근 내가 뭐 썩 괜찮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나는, 지금보다 낯을 가리고, 지만의 기준도 제법 높게 잡아놓은 채 그 기준에 미달되는 내 자신과 타인을 내치는 애였다. 그러면서 ‘내가 다 맞아! 나는 옳은 생각을 하는 올곧은 사람이야!’ 하는 신념에 가득 찬 건방진 애송이였다.

그러니 당연히 직장생활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시작하는 게 어려웠다. 어찌저찌 시작했더라도 오래 이어가기란 쉽지 않았다.


‘내가 왜 이걸 해야 해?’

‘내가 이걸 왜 참아가며 나를 괴롭혀야 해?’


돌이켜보니 나도 요즘의 젊은이들처럼 ‘나’를 애지중지하던 아이였구먼. 허허



물론 지금도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관이 확실히 있고, 그걸 나의 중심 삼아 살아간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20대의 나를 ‘건방진 애송이’로 보는 건,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회피와 도피를 해왔다는 걸 이제는 인정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일 테다.

아직 내 안의 세상이 전부라고 믿던 나이의 나였으니 뭐 귀엽게 봐주기로 한다. 그때의 내가 자라 지금의 내가 됐으니 영 지워버리고만 싶은 과거는 아니다.




30대가 된 나는 조금 더 과감한 사람으로 자랐다. 시작하는 것에 있어 예전보다 덜 망설이고 내가 한 일이 잘 되지 않았다고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질질 짜는 법도 잘 없다.

낯가림? 그게 뭔데? 처음 만난 사람과 키우는 강아지 자랑 배틀도 할 수 있다.

내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쉽게 때려치기 전에 내 기준에 근접하도록 변화시킬 방법을 찾는다. 때로는 조율과 타협도 적절히 해 가면서.

어디서든 해야 할 말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아낄 줄도 안다.


쓰다 보니 지 자랑 한 바가지인가 싶어 머쓱하지만, 뭐 사실이긴 하니 그런가 보다 넘어가 주시길.


물론 어르신들이 봤을 때 위에 늘어놓은 자랑 같은, 내 내면에서 비롯된 모습들은 눈에 바로 보이는 게 아니니, 지금의 내 꼬라지를 가지고는 ‘에잉 쯧’ 혀를 차며 한마디씩 할 수도 있다.


가끔 엄마 친구들을 만나면 실제로 이런 소릴 듣게 된다.

아이구, 글이는 남자친구 있니? ?  없어? 결혼  ?”

-      왜 없냐구요? 그냥 없어요. 아니 그냥 없어요. 결혼요? 글쎄요?


“서울에서 혼자 사는 거 안 외로워? 고생이다, 고생이야.”

-      나 혼자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데요. 음 고생이란 건 좀 인정!


이모들의 ‘딸 같은 나래 걱정 한마당’이 펼쳐지는 내내 나는 웃는 얼굴로 그 걱정 공격들을 챙챙 막아 내다가, 결국 맥 없이 픽 쓰러지고 마는 그 한방을 맞게 된다.


“이제 너도 곧 마흔 된다. 눈 깜짝하면 마흔이야~ 세월 금방 가.”


두-둥

마흔...? 마흔이요? 내가 마흔??


“아, 왜 그러세요. 무섭게에”

이모의 팔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며 무섭다고 ‘이잉이잉’거리게 되는 것이다.




29살에서 30살이 될 때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좋은 날 다 갔다, 하며 우울했다는 친구들의 말에 공감이 가지 않았다. 나는 나의 30대가 기대됐다. 왠지 더 멋진 내가 될 것만 같은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40대가 되는 건 왜 이리도 두려울까? 인간의 평균 수명이 과거에 비해 길어졌고, 그렇게 따지면 나는 아직 한창인 게 맞다. 요즘 40대가 어디 예전 40대와 같나? 내가 마흔이 돼도 그렇게 크게 변하는 건 없을 거다. 하지만 내가 ‘마흔’이 된다는 그 자체가 뭔가 좀... 이상한 것이다.


아무도 지운 적 없는 그 막연한 책임감과 '나이에 맞게' 어른스러워야 한다는 강박 때문일까?

내가 상상했던 40대의 나만큼 이뤄놓은 게 없을 것 같아 미리 실망하는 건가?

아니면 막지 못할 노화에 변해갈 내 모습이 벌써부터 슬픈 걸지도.


아무튼 내가 이렇게 지레 겁을 먹고 징징거리는 동안에도 시간은 간다. 그렇게 나는 마흔을 맞을 거다. 피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쓰다 보니 자연스레 깨달았다.

피하지 못할 마흔을 조금이나마 덜 두렵게 맞는 방법, 나는 그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아무도 지운 적 없는 막연한 책임감과 어른스러워야 한다는 강박은 벗어 놓자. 오히려 '나로 살아가는 법'에 대해 고민하고 실행하는 게 남는 장사다.


내가 상상했던 40대의 내가 아니더라도 아직 나에겐 시간이 많고, 이런 걱정 할 시간에 뭐라도 행동한다면, 어쩌면 내가 상상한 내가 비스무리하게라도 되어 있을지 모를 일이지.


노화...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것... 하지만! 나는 충분히 동안이지 않은가? 설마 그 몇 년 새 세월 정통으로 맞아 폭삭 늙지는 않겠지. 요즘 화장품도 참 잘 나오고 말여..!



아마도 나와 같은 불안함을 가진 동년배들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이 불안함과 두려움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네, 친구! 우리 쭈그렁 노각 같은 마흔이 아니라, 아직 상큼함이 남아있는 피클 같은 마흔 맞는 연습을 해 보자고!


벅차게 아름다운 노을처럼 나이 들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열정낭비러(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