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부터 OBS와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공동 탐사보도 '진실을 캐다'가 시작됐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기존의 짧은 방송 리포트에서는 담지 못했던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사안은 청주공업고등학교 핸드볼부에서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입니다. OBS의 방송권역인 수도권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학원 스포츠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여서 보도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처음에는 폭력 사건에 집중했지만, 양파껍질을 벗기듯 까면 깔수록 체육계의 병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이규민(가명) 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운동을 하면 빵과 우유를 준다는 이야기에 이끌려 핸드볼을 시작했습니다. 학생 선수들이 입는 빨간색 단복도 그렇게 멋져 보였다고 했습니다. 포지션은 골키퍼. 팀에 수문장이 없어 우연히 맡게 됐지만, 금방 그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자기 전에도, 주말에도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공을 더 잘 막을 지에 대한 고민뿐이었습니다. '골키퍼는 보호 장갑이 없나요?'라는 기자의 순진한 질문에 이 군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축구 골키퍼는 장갑을 끼고 있으니, 당연히 핸드볼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그럼 이제껏 맨손으로 그 빠른 공을 막아왔던 거구나'.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군은 함께 생활했던 동료들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습니다. 함께 먹고 자고 하다 보니 가족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방과 후에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이 군에게 핸드볼팀은 따뜻한 보금자리였고, 형·동생들과 함께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가장 소중한 걸 잃었을 때 기분은 어떨까.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 군은 삶의 전부였던 핸드볼을 고등학교 1학년이던 지난해 그만뒀습니다. 핸드볼 선수로 대학에 가기 위해 경남 창원에서 충북 청주로 유학까지 갔는데, 청주공업고등학교 핸드볼부는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코치는 손, 야구방망이, 커피포트 등으로 학생 선수들을 수시로 폭행했는데, 코치의 아들인 주장 선수만 예외였습니다. 폭행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까 걱정해 학생 선수들의 스마트폰을 검사하기까지 했습니다.
부전자전. 주장 선수도 수시로 후배 선수들에게 기합을 주고 옷걸이 쇠봉 등으로 때렸습니다. 견디다 못한 이 군은 결국 슬리퍼 차림으로 기숙사를 뛰쳐나왔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도 혹여 코치가 쫓아오지는 않을까 걱정했고,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이 군의 어머니인 박지희 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달 21일. 당시 상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어머니는 한 문장, 한 문장 힘겹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진심 어린 사과만 했어도 박 씨는 가해자를 용서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사과는 고사하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건 물론, 성추행 가해자라는 누명까지 씌우려고 하자 어머니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피해자는 모든 걸 잃었는데, 가해자는 올해 명문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가혹 행위가 지속적이고 심했다는 이유로 '강제전학'조치까지 받았지만, 경희대학교 스포츠지도학과에 체육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했습니다. 부당하다는 피해자 어머니의 호소도 소용 없었습니다. 경희대는 학폭 사실을 평가할 수 있는 전형 요소가 없었고, 모집계획이 이미 확정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과거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을 고려하더라도 향후 전형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얘기가 아직도 없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경희대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지난 2월 학원 스포츠 폭력 근절대책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던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기관도 소극적입니다. 관련해서 논의해보겠다는 이야기만 반복했고, 보도가 6편이나 나올 동안 관리·감독 강화 등 뚜렷한 대책을 내놓은 적은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올해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사건이 터져야만 허겁지겁 미봉책을 내놓고 정작 뒷일은 무관심한 당국의 행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5일 오후, 두 가지 결정이 나왔습니다.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재심의 결과, 가해자인 주장 선수에게는 기존 자격정지 3년에서 5년으로 징계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가해자가 강제전학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도 1심과 똑같이 강제전학이 합당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 군의 어머니가 홀로 싸움을 이어온 것도 어느새 1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해당 결정이 내려지던 날, 어머니는 그간의 고생이 스쳐 가는 듯 붉은 눈시울로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해줬던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씀하면서도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을 다른 학생 선수들을 떠올렸습니다.
"운동을 잘하든 못하든 그 종목을 하고 있다는 것, 견뎌왔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박수 쳐주고 싶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혹시나 마음 아픈 일이 있었다면 더 이상은 혼자가 아니니까 누군가에게는 손을 내밀어도 괜찮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일각에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너무 집중해서 보도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듣기도 했습니다. 일리 있는 말씀이지만, 앞서 설명해 드렸듯 이 군이 겪은 일은 이 군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 보도를 통해 우리 체육계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고발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뉴스 가치를 논하기 전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어머니는 자녀의 진로를 위해 침묵한 동료 학부모들을 이해했습니다. 때린 코치와 주장을 원망하면서도 청주공고 핸드볼부에서 아들을 하루라도 빨리 데리고 나오지 않았던 자신을 탓했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한 사람의 눈물도 닦아주지 못했으면서 수많은 이들의 슬픔을 논했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었습니다.
이 군은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학생들과 대화를 자주 하고 함께 많은 추억을 쌓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 군이 꼭 꿈을 이뤄, 좋은 스승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으면 합니다. 운동밖에는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부당한 일을 견뎌내는 학생 선수들에게 새로운 길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취재하면서 만난 여러 전문가들은 체육계가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주셨습니다. 이분들이 있어 우리 체육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체육계 모든 병폐의 근원으로 지목되는 체육특기자 제도 등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할지 이제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코치는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됐고, 주장은 특수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입니다. 가해자가 어떤 처벌을 받는지, 우리 체육계가 더 건강해질 방법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취재 이어가겠습니다.
"맞지 않고 운동하고 이번 올림픽처럼 그렇게 1등 하지 않아도 행복하고 자기가 자신의 한계를 넘었기 때문에 행복하고 거기에 우리가 박수쳐줄 수 있고, 그 피를 흘리지 않고도 땀과 눈물만으로도 행복한 그런 운동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