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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쫌생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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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던컨 Apr 15. 2023

금쪽같은 내 새끼를 때렸다.

참 손이 많이 가는 둘째 녀석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데도 글씨만 놓고 보면 2학년이 쓴 글씨라 해도 믿을 정도라서 시험지에 정답을 적어도 선생님이 무슨 글씨인지 못 알아보겠다며 틀렸다고 채점할 경우가 다반사였고 그런 필체를 가진 본인 역시 글씨를 쓰고 읽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난 겨울방학 더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글씨 교정을 알아보다가  근처에 글씨 교정학원이 있다고 해서 평일에는 엄마가

주말에는 아빠가 도맡아 학원으로 라이딩을 했다.

 

주말 아침에 아들은 학원에서 글씨를 쓰고

아빠는 근처 카페에서 글을 쓰고 그렇게 격조 있는 부자가 되기로 나 혼자 마음을 먹었

열두 살 아들에게 주말 아침은 늘어지게  

열두 시까지 푹 자야 할 시간이글씨학원에 가자고 깨우는 아빠의 부지런이 잔소리로 느껴질게 분명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겠다.

아빠는 침 운동까지 하고 와서 홀로 개운해하면서 둘째에게 어서 일어나 학원에 가자고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겨우 반쯤 눈을 뜬 아들이 아빠 샤워 마칠 때까지만 게임을 하겠다고 해서 못마땅한 승낙을 하고 나서 씻고 옷 입고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도 아들은  침대에 엎드려 계속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더는 못 기다리겠어서 아빠 다 씻고 옷도 다 입었는데 갈 준비 안 하니 하면서 타이르듯이 얘기를 했는데 막상 돌아오는 대답은

"아유 정말 오늘 학원 안 가면 안 돼?

오늘은 정말 가기 싫은데" 면서

눈은 게임기에 고정한 채 대답하고 있었다.


아빠의 타이름이 슬슬 분노로 변하며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야! 네가 아빠 씻을 동안만 게임하겠다고 했는데

씻고 옷 다 입을 동안 넌 뭐 한 거야?" 라면서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높아진 데시벨은 더 높은 데시벨을 불러오기 마련인데 아들은


"아 몰라 어쨌든 오늘은 안가!"라고 하면서 스케줄을 틀기 시작했다.


이 집 아빠는 소문난 노빠꾸 INFJ인데 그중에서도 시간강박 가득한 트리플 J이다.

그런 양반에게 예고 없이 일정을 바꾸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아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 신념에 찬 게임타령으로 선을 넘고 있었다.


둘은 학원에 갈 거냐 말 거냐

가더라도 오늘은 안 간다 게임 좀 하자

언쟁을 침대 위에서 벌였고 아들은 소중한 게임기에 위해가 가해질까 봐 얼른 저장을 하고

"자! 자! 이제 안 하면 되는 거지?" 라며

백 번 양보한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눈을 지릅뜨고 있었다.


아빠는 속으로 내 아들을 저런 괴물 같은 모습으로 만든 게임기가 다 요물 덩어리라고 생각하고  벽에다 던져 부숴버릴까 보다 싶었지만 아직 이성이 남아 있어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게임기는 껐으니 둘의 대치는 이제 게임이 아니라 학원을 가고 말고로 번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빠의 터져버린 설교 방언에 기세가 눌린 아들은 아아아악 하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아유 그냥 한 대 칠까 보다'의 아빠 오른손 번쩍은 허공에서 멈춰있다가 더 움직이지는 않고 대신 "시끄러워 너 빨리 준비해"라고 말한 그 순간이었다.

 

"안 그래도 하고 있었잖아 게임기도 끄고 이제 가려고 하고 있는데 왜 난리야?" 하는 소리에

아빠는 핑하고 이성을 잃고 말았다.


바락바락 고함치는 아들의 눈은 수컷의 눈이었다.

아들 키우는 선배들이 사춘기 아들은 한 번 확 잡아줘야 한다는 그 순간이 내게도 온 것 같았다.

여기서 제압을 당하면 안 되겠다 싶어

허공에 멈춰 있던 아빠의 손이 주먹으로 모양을 바꾸면서 내려와 아들의 가슴팍 꽂아 들었고 침대에 벌렁 누운 아들의 목을 조르면서

야 이 자식아 다시 한번 말해보라고 윽박지르고 있었다.

아들도 가만있지 않았는데 손으로 할퀴어대며 우리의 상한 감정을 몸으로 내뿜고 있었다.

집사람이 달려와 말리면서 난동은 멈춰졌다.


게임기 안 파이팅 캐릭터는

우리 부자의 모습으로 변했고  

글씨를 연마하고 글을 짓겠다며 격조 찾던

우리 부자는 격투를 하고 있었다.  

아들의 눈에서 수컷을 보았다지만

아들 역시 아빠의 눈에서 수컷을 느꼈을 테다.


살면서 한 번도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이성적으로 아이들을 설득하면서 키워가겠다고 하는 다짐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을 수가 없어 아빠는 혼자 나와 집 근처 카페에서 두어 시간을 보내다가 들어갔고 안방에서 아들과 단 둘이 앉아 아빠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또 아빠가 왜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는지 심정을 솔직하게 말하며 어떤 변명이든 간에 때린 건 정말 잘못이었다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아빠는 아들의 심리, 아들과의 대화, 게임에 집중하는 아들 등의 주제로 된 유튜브 강의를 들으면서 반성하고 반성했다.

아들이 하는 게임의 한 판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 게임은 어떤 전략으로 하는 건지 그런 게임을 하는 아들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하면 바로 그만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내가 짜놓은 일정으로만 닦달했기 때문이다.


그간 말썽 없이 자라준 큰 아들 덕분에 아들 키우는 거 어렵지 않다 하면서 나 정도면 정말 잘하는 아빠라며 자뻑이 심했었는데

큰 아들과 다른 기질의 둘째와 맞닿으면서 초보육아 아빠로 다시 거듭나기로 했다.


미안하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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