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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잇 Jun 09. 2022

답답한 겨우살이

날씨가 그럭저럭 우중충하던 날, 개와 산책을 하다가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 휴일의 내 턱처럼 지저분하게 가지를 뻗은 가로수에 매달린 것을 보고 저렇게 큰 둥지는 어떤 새가 지었을까 생각한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혼잣말로 구시렁 대보니 웃기지만 건강한 보폭으로 걷던 아주머니께서 “에이 뭔 둥지, 겨우살이인데”라고 놀리듯이 가셨다. “네?”하고 고개를 돌렸으나 그곳에는 머쓱한 들바람만 불었다. 이럴 수가, 난 지금까지 초등학교의 은행나무와 집 앞 가로수를 보고 좋은 둥지를 가졌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충격에 멍을 때리는 동안 나의 개는 풀밭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급히 목줄을 당겨 사람이나 개나 정신을 차렸다. 개 버릇 개 못주는 우리 집 개는 냄새를 맡는 척하며 풀밭에 들어가 잡초를 뜯어먹는다. 잡초인 줄 알고 담배꽁초를 먹어 급히 손으로 입을 벌린 적도 있다. 목줄을 당긴 후 얼마 걷다 벤치에 앉아 이제는 알고 있는 가로수의 겨우살이를 보며 “그러고 보니 처음 봤을 때보다 커지고 둥근 거 같네”라며 혼잣말을 했다. 이번에는 다행히 들은 사람은 없었다.


집에 들어와 소파에 앉아 옆에서 크림치즈 베이글을 먹고 있던 엄마에게 초등학교의 은행나무에 있던 커다란 새 둥지를 기억하는지 물었다. 다행히 엄마는 나와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라 둘 다 같은 은행나무를 알고 있다. 몇십 년 전에도 그 은행나무는 있었다.


“은행나무에 둥지가 있었나?”


“있잖아, 가운데 있는 커다란 둥지”


“겨우살이겠지…”


그냥 내가 몰랐던 것이다. 겨우살이도 내가 지나갈 때마다 “둥지가 크다~”라며 멍청하게 오해하는 것을 보고 답답했을 것이다. 혹여나 나보다 멍청한 겨우살이라면 “난 둥지인데 왜 새가 한 번도 안 오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난 그렇게 겨우살이를 가스라이팅 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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