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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잇 Jun 21. 2022

금붕어는 사실 오래 산대요

금붕어의 유작 필름영화

그때를 생각하는 내 머릿속을 영사기의 빛을 투과하여 비추어 본다면 마치 오래된 필름 영화를 틀어놓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만큼 체감상 오래전 몇 살 때인지도 모를 여름방학 때의 나는 친구 집 앞 다른 초등학교 문방구에서 축구공을 뽑으려고 모아둔 용돈을 진탕 쓰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쉽게 풀리는 게 하나 없던 나는 번연히 축구공을 뽑지 못했다. 대신 원하지도 않던 정말 작은 실험관찰용 금붕어 한 마리가 생겼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공기가 가득 찬 비밀 봉투에 담겨 있었다. 온통 주황색의 금붕어는 성부 성령께서 창조하실 때부터 초등학생들의 관찰 숙제를 위해 한 달만 지상에 있다가 올라오라는 명을 받은 것과 같이 작고 힘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내가 봐도 단명이 타고난 것이 보였다. 해가 떠있는 동안 친구와 같이 있을 때까지 별생각 없이 그 금붕어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가며 여러 잡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들어가면 책임도 못 지면서 무슨 금붕어를 가지고 왔냐며 엄마에게 엄청 혼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 소심했던 나는 그런 걱정만 하다 해가 희끗할 때 집 앞에서 다시 발길을 돌려 금붕어를 반납할 생각으로 문방구로 향했다. 하지만 문방구는 그새 문을 닫았었다.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다 소심한 것도 모자라 생각도 짧았던 나는 바로 앞 초등학교의 벤치에 금붕어를 두고 그냥 집으로 왔다. 집에 오고 난 후 전부 해결됐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기분은 너무 좋지 않았다. 가슴을 홍두깨로 마구 밀듯 답답하고 우울한 감정이 들었다. 그런 감정을 참지 못하고  나는 뜬금없이 안방으로 가서 엄마에게 금붕어를 키워도 되는지 물었다. 엄마는 의외로 그러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서둘러 초등학교의 벤치에 가보았다. 다행히 금붕어는 그대로 있었다. 이미 어두운 밤이었지만 금붕어를 들고 있으니 무섭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서 엄마에게 금붕어를 보여주니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작은 유리 중접시 안에 수돗물을 담고 다음 날 금붕어를 넣어주었다. 엄마는 네가 가져온 것이니 네가 직접 관리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금붕어는 나와 우리 집에서 3년을 살다가 어느 날 머리에 큰 혹이 생겨 며칠 후 죽었다. 열심히 물도 갈아주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나름 정성을 들여 오래 키웠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술자리에서 아는 사람에게 나름 우수에 잠겨 횡설수설 금붕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금붕어가 너무 빨리 죽어서 슬프다고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이야기가 끝난 후 금붕어는 3년을 살았다고 다시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도 다시 되풀어 금붕어가 너무 빨리 죽어서 슬프다고 말했다. 이어서 금붕어는 사실 3년보다 훨씬 오래 산다는 것도 말해주었다. 족히 10년은 산다고 말이다. 나는 몰랐었다. 노환으로 혹이 생겨 죽은 줄 알았던 금붕어는 사실 단명한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 작고 힘없는 금붕어를 보고 단명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어린 나는 금붕어에게 운명을 정해줬다.


그때를 생각하는 내 머릿속을 영사기 빛을 투과하여 비추어 본다면 마치 오래된 필름영화를 틀어놓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여러 번 머릿속으로 금붕어의 유작 전기 영화를 감상한다.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전부 올라가고 별다른 쿠키영상은 존재하지 않지만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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