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쉬잇 Jun 29. 2022

침대 밑 괴물과 옷장 속 괴물, 그리고 시라노

어쩌다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자취를 시작했다. 너무 급하게 대충 구해서일까. 외진 동네에 이웃의 반은 무서운 외국인(외국인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무서운 외국인’)이었고 쓰레기를 버리는 곳은 너무 멀리 있었다. 이외에도 다른 불만사항이 많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막상 혼자 살아보니 느끼는 가장  문제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무섭다는 것이다. 가장 편안해야  거주공간이 무섭다니 정말 비극이지만 사실이다. 어이없게도 이유는 나에게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과를 끝내고 자취방에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서 얼마 동안 어둠 속에서 전등 스위치를 찾고 있었다. 스위치를 찾는 동안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가 집에 없는 사이 옷장이랑 침대에 괴물이 생긴 것은 아닐까?’라는 동화적인 상상을 했다. 정말 있기를 바라서  것은 아니었지만  멍청한 상상을 하고  직후, 옷장  옷걸이 봉이 떨어져 제법  굉음이 들렸다.  순간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을  누군가 옆구리를 검지 손가락으로 사정없이 찌른  깜짝 놀라며 요란한 비명을 질렀다. 그때 이후로 반쯤 옷장  괴물을 믿게 되어 옷장을  때면 항상 옷걸이에 걸린  사이를 뒤지며 괴물이 있는지 확인한다. 어차피 괴물과 마주치더라도  여기 있냐고 별달리 따지지 못할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건이 있고 며칠    드는 새벽에는 침대  괴물까지 만들어내서 지금까지도 괴물이  발목을 낚아채지 못하도록 이불속에 발을 꼭꼭 숨기고 잔다.


이제는 더 이상 이 불편한 동거를 할 수 없으니 상상으로 만든 괴물을 다시 상상으로 없애려 한다. 그래도 이왕이면 지금까지 같이 살면서 무섭기만 하지 해를 끼친 것은 없으니 좋게 마무리를 지었으면 좋겠다. 우선 괴물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첫 번째 상상이다. 자취방에 들어온 나는 늘 하던 ‘거기 있는 거 다 아니까 빨리 나와라!” 같이 허공에 하는 멍청한 혼잣말은 집어치우고 침착하게 전등 스위치를 찾아 킨 다음 침대에 힘 없이 앉는다. 그러고는 축 처진 어깨너머로 “그만 나가주면 안 될까? 너무 힘들어”라고 말한다. 그럼 괴물들은 눈치를 슬슬 보며 조심스럽게 나와 현관에서 대충 신발을 구겨 신고 “신세 많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장조림 만들 때는 올리고당 조금만 넣으세요. 너무 달아요.”라고 한 뒤 도어락의 수동개폐장치를 돌려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간다. 이 방법은 괴물이 만약 내 생각보다 더 양심이 없으면 실패할 수 있으니 두 번째 상상으로 넘어가자.


자취방에 들어온 나는 곧바로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침대 밑 괴물에게 “있잖아. 옷장에 있는 애가 저번부터 너 계속 쳐다보는 것 같더라? 관심 있는 것 같은데 대시해봐”라고 말한다. 그러면 침대 밑 괴물은 “그치, 나만 느낀 거 아니지? 역시 그렇다니까!”라며 있지도 않은 일에 맞장구를 칠 것이다. 나는 이제 침대 밑을 빠져나와 옷장 문을 열고 옷걸이와 핑크색 뚜껑의 하마 제습제를 치운 뒤 옷장 속 괴물에게 “있잖아. 침대 밑에 있는 애가 너한테 관심 있다는데? 잘해봐”라고 말한다. 그럼 웃장 속 괴물은 “그래? 어멈머”라고 수줍어할 것이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전자레인지에 카레를 넣고 돌리듯이 입꼬리와 눈썹을 들썩거리고 옷장 문을 닫은 다음 침대 위에 앉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머리에 포마드를 멋들어지게 바른 신사가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침대 밑에서 나와 가볍게 옷장 문에 노크를 한다. 그러면 프릴 원피스를 입은 숙녀가 옷장  문을 열고 나와 장미꽃을 받아 들고는 신사와 손을 잡고 도어락 오픈 버튼을 눌러 띠리릭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간다. 해피엔딩에 열린 결말이니 이 방법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나만의 라쇼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