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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잇 Oct 29. 2022

매를 버는 시(詩)와 하와이안 셔츠

고등학교 시절, 당시 나는 체리색 공원 벤치에 앉아 내 인생에서 가장 오글거리고 형편없는 시를 써서 어느 운문 대회에 응모하였다. 시를 쓰는 도중에 몇 번 먼 산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을 정도로 꽤 형편없었다. 하지만 다른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계속 이어갔다. 응모할 때 기재한 집 주소로 심사위원분들이 빛깔 좋은 물푸레나무 야구 배트를 들고 찾아와서 나에게 몽둥이찜질을 해주셔도 할 말이 없을 것이며, 집에 계시던 어머니도 내 시를 보고서 열심히 찜질해주시는 심사위원분들께 마시고 하시라며 오렌지 주스를 대접할 정도였다. 그러나 뜻밖에 2등으로 입상하였다. 심사위원분들의 존함도 살펴보았다. 이후로 시인이라는 오랜 꿈을 버림과 동시에 (여전히 시는 자주 읽지만) 시를 쓰는 것도 그만두었다. 어떤 알량하고 좁은 마음에 그랬는지 아직 알 수가 없다.


타지 생활을 끝내고 잠시 머무를 생각으로 고향에 왔다. 그리고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서 내 마지막 시를 쓴 공원 벤치에 앉아서 연못과 허리 굽힌 버드나무를 바라보았다. 벤치에서 일어나도 버드나무를 조금 더 생각하고 싶어서 잎을 어루만지며 조금 쓸어 담았다. 나는 여름에 거의 하와이안 셔츠만 입고 다니지만, 고향에선 넉살 좋은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입지 않는다. 어쩌다가 살짝 튀는 사람이 된 것이다. 튀는 사람이 되어서는 할아버지들의 바둑을 남모르게 지켜볼 수 없으니 포기하고 공원을 나왔다. 반항심이 생겨서 번화가에도 가보았지만 지나가던 바가지 머리 고등학생 무리가 조폭 같다고 수군거리며 지나갔다. 그나마 어울리는 곳은 바버샵이니 자주 가게 된다. 덕분에 멀끔해졌다.


만약 내 형편없는 시가 쓰여진 셔츠와 가끔 길을 가다가 무례한 소리를 듣는 하와이안 셔츠 중에 고르라고 한다면 무조건 하와이안 셔츠를 고를 예정이다. 어떤 알량하고 좁은 마음인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다. 아마 아직 야구 배트가 무서운 것 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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