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없는 편지
적고 나서 하나둘씩 덜어내다 덮어버린 말들을 기억을 더듬어 주소 없는 편지에 다시 적어 내립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흘러가되 변치 않고 싶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반 친구들과 다 함께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10년 후였는지 혹은 20년 후였는지도, 나중에 같이 오자고 약속했던 친구들의 얼굴도 이제는 기억나질 않습니다.
이유가 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곤 합니다. 다른 색의 애정을 풀어 새롭게 채색하듯이 때로는 뒤늦게 이유를 덧붙이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루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책이 완성되어 펼쳐보고 나서야 책의 첫 페이지를 파랑으로 가득 채워야겠다는 다짐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불릴 때마다 호칭도, 그렇게 정의된 자신도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자신을 스스로, 무언가로 정의하기엔 어디에도 충족되지 못하고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습니다. 사진가라기엔 전문적이지 않았고 작가로 불리기엔 거창했으며 막상 예술가라는 직업에는 걸맞지 않았으니까요. 순간을 붙드는 기록가 정도가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남기고 싶었거든요.
우리가 함께했던 공간은 빛바랜 장소가 되었습니다. 스치는 바람에도 살갗이 아려올까 봐, 너무 깊게 묻어버린 타임캡슐처럼 간직할까 봐 마음속 적당한 장소에 숨겨두고 지레 도망가기로 했습니다. 무엇이든 적당히 하는 게 제일 어렵다는데 나약하고 치사한 마음을 당신은 이해해 주시려나요.
아마도 분명 말 대신 웃음으로 답해주었을 테죠.
그 답례에 당신을 더 좋아하게 됐을 것 같아요,
입 밖으로 뱉지는 않겠지만.
‘너의 하늘은 언제나 맑을 거야’
누군가가 저에게 적어준, 잊히지 않는 문장입니다.
당신의 하늘은 언제나 맑기를 바라고 있겠습니다.
알지 못하시더라도 그렇게 할게요.
답례에 대한 답례로
함께했던 모든 시간을 붙잡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