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희 May 08. 2022

입하

봄과 여름 사이



밤이 찾아와 어두워지기 전에 흐린 날의 색깔을 골라본다. 허상을 품었다. 깨닫는 순간, 순식간에 선연해졌다. 외로울수록 혼자여야 했다. 사진을 보고선 그림 같다, 그림을 보고선 사진 같다고 감탄했다.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보고 사진의 구도를 떠올렸다. 필름을 감다가 끊겼고 필름 레버가 계속해서 감겼다. 무리해야만 상황을 벗어나 해결할 수 있었다. 목표와는 다른 희망 사항을 머금었다. 내려놓기 위해 찾아간 바다에서는 숙제를 얻고 돌아왔다. 무턱대고 계속해서 올라갔다.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더 쉽다고 하지만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의 무게가 실렸다. 눈을 감고 주저앉았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다시 계단을 뛰어올랐다.


계절의 경계에서 다홍색 도화지를 핑계 삼아 볼을 붉혔다. 타오르는 노을을 붙들고 봄을 떠나보냈다. 해가 지나간 자리는 짙은 여름 냄새가 났다. 길어지는 빛이 바람에 감겨 틈새로 파고들었다.


지나오고 다가올 순간들을 푸르게 되새길 수 있길. 스치고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그대로 있어 주길. 결국에 떠날, 이 낯선 것들이 그리움에 사무치지 않길.





Kodak Ultramax 400
매거진의 이전글 꽃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