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시선
내가 쌓아 올린 것들이 나를 무너지게 하던 밤이었다. 청춘과 청량함 대신 방전된 배터리를 떠올리게 했다. 무계획이 계획이었고, 하루를 매듭짓기보다 풀어헤쳤다. 물음표가 수챗구멍의 머리카락처럼 서로 엉켜있었다. 커서만 뚫어지게 바라보다 보면 커서의 움직임이 멈출 때마다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깜빡임으로부터 달아나 도달한 곳에서는 백지 위의 방랑자일 뿐이었다.
결핍은 종종 환상으로 자라났다. 동경심이 내비친 여우비를 올려다보며 문득 하늘이 드높아졌다고 생각했다. 여름의 끝에서 꺼내먹은 파랑이 가을을 성큼 담은 청사진을 가리켰다. 얼음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