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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토프 Dec 19. 2022

마흔이 되는 줄 알았는데 다시 서른여덟 살이 되었다.

겨울도 다시 봄이 된다.

봄날일 줄 알았던 2022년은 2021년과 다르지 않았다. 엄마도 안 돌아보고 3월부터 교실로 뛰어들어가던 막내는 10월 한 달 내내 등원을 거부하더니, 어느 날... 너무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에 자신의 손톱자국을 내고는 나를 보며 뛰어와서 안겼다.


3,4,5,6,7월은 이제 나도 숨좀 쉬고 사는구나 싶었다. 아이들을 보내고 적막 속에 멍 때리도 하고, 지인들을 만나 수다도 떨고, 식당에서 점심도 먹고. 그리 하고 싶던 별거 아닌 일들에 만족하며 잘 지냈다. 그러다 가끔씩 하원 시간이 다가오면 시간은 흘러가는데 한 것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초조함에 다리를 떠는 날이 늘어갔다. 그리고는 2시가 되면서부터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고, 막내의 하원 이후 시간들이 전쟁같이 느껴지면서 어린이집에 보내면 다 괜찮을  것 같던 나의 시간들이 점점 더 피폐해졌다. 내발로 다시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가 우울증 최고 단계에 터치하기 직전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수면제 없이는 깊게 자지 못할 지경이 됐다. 두 돌이라 그런가 보다 하며 넘겼던 일들이 지나고 보니 어린이집 스트레스였나 보다. 등원 거부를 직접적으로 하기 두 달 전부터였다. 아이는 하원하는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한 시간에 한 번씩 뒤집어졌다. 심할 때는 보름 정도 밤에 내 거야 를 외치며 대성통곡하기도 했다. 오히려 퇴소를 고민하던 때에 집에서 지내는 동안 안정을 찾고, 흥분하는 일이 줄었다. 십 분의 일. 무시할 수 없는 너무나도 비교되는 아이의 태도에 퇴소를 결정했다.


집에서 부모랑 잘 지내는 아이는 밖에서도 잘 지내는 편이다. 집에서 부모가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는 밖에서도 쉽지 않다. 그런데 막내는 아니었다.


나와 껌딱지가 되어서 지내게 된 지 꽉 채운 두 달이 되어간다. 지내다 보니 막내의 기질도 거의 파악이 되었고, 단 한 가지 말고는 답을 찾은 듯했다. 언어나 행동으로 부정적인 표현이라 느껴지는 경우 반응이 꽤나 과격하게 나온다. 지금은 말로 표현해보게 하려고 반복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칭찬도 곁들이고.. 예전에는 열이면 열 왜 뒤집어지는지 몰랐는데, 요즘엔 하루 한번 정도? 그래도 아이가 어느 포인트에서 화가 나는지 알아냈다. 이유 없이 화를 내는 게 아니라는 게 다행이라 느꼈다.


막내는 두 돌 쯤부터 한글 자음, 모음을 깨우치고 처음 보는 글자도 유추해서 발음하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글을 읽는 속도도 빨라졌다. 언어 이해력은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막내의 습득력은 영재 아니면 자폐일 것 같다는 확신을 주게 만들었다. 답답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내가 다니던 의사 선생님께 소아정신과를 추천받고도 고민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에게 아이를 보여주고  조언을 들었다. 가서 나쁠 건 없어 보인다고. 그랬다.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 지금 상황에서는 또 답답할 뿐이다. 내가 우려하던 상황이 될지도 모르니 보험부터 가입하고, 아이를 데리고 가보기로 했다. 진단이 어떻게 나오든 나는 이 아이를 잘 키워내야 한다.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맥주도 못 마시고, 감기약도 쉽게 못 먹었다. 날 불안하게 했던 막내랑 지내면서 약에 의존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싶어 일주일 전부터 약을 끊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어졌다. 요동치는 심장은 없지만 잠은 안 온다. 그래도 어제는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사고, 2년 전부터 미뤄온 새로 가구들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약을 먹어도 움직일 생각이 없던 몸이었는데, 아이가 바뀌는 걸 보니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다시 눈곱만 뗀 얼굴에 모자를 눌러쓰고,  고무줄 바지에 넉넉한 티셔츠를 입고, 매일 똑같은 운동화를 신는다. 옷장에서 나오지 못한 원피스, 코트. 작년 겨울부터 사려고 벼르던 롱부츠. (지퍼 올릴 시간도 사치다.) 다시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맘껏 누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몇 년이 걸리든 그럴 날이 오기만 한다면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약을 타러 가기 전 날까지 나는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다. 눈물이 안 났다. 지금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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