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끝자락에 지인들과 만난 까페에서 접종 QR코드가 무의미한 나는 격리 해제서를 사장님께 보여드렸다. 이게 뭐예요 묻는 그분에게 방역 패스 예외 대상자라고 알려드렸더니, 나 같은 손님은 처음이라며, 신기하신지 코로나 증상에 대해 물어오셨다. 3일 차에는 정점을 찍고, 5일 차에 병원 이송될 때쯤에는 거의 다 나았었다고. 증상은 매일 달랐지만, 지나고 보니 신종플루와 폐렴보다는 덜 아프고 지난 거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동안 자체 격리하듯 지낸 나에게 확진 이후 3개월 뒤의 코로나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사장님께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걸리면 무조건 죽는 무서운 바이러스는 아닌 것 같아요. 너무 겁내실 필요는 없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일행에게 돌아갔다.
그 이후로 방역 패스는 재판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나는 여전히 자체 격리하듯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걸리고 앓는 것보다, 또다시 검사받고, 접촉자 격리시키고, 보건소와 통화하는 과정들이 너무나도 싫었다. 오미크론이 감염력이 높아지고, 증상이 약해지는 바이러스로 바뀌는 동안에도 다른 나라들이 방역 패스를 완화하고, 방역체계를 바꾸고 있음에도 바뀌지 않는 우리나라 방역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 사이. 백신 접종을 한 청소년들에게도 부작용이 나타났고, 3차 접종률이 50퍼센트가 넘어가는 것을 보며, 또 화가 났다. 청소년 방역 패스에 제동이 걸리자마자 3차 접종을 6개월에서 3개월로 앞당겼다. 복용하는 약 조차도 복용량과 기간이 정해져 있다. 하루아침에 당겨진 접종 간격을 보고, 나처럼 의심하는 자가 많길 바랐다. 4천만 회분의 백신을 계약했다는 기사를 보며,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길 바랐다. 하지만, 50대 이상은 3차 접종을 거의 다 했더라. 접종이 개인 자유의 선택인 것은 맞지만, 3차 접종은 또 다른 문제라 생각한다. 화이자 ceo조차도 6개월 간격을 주장했으니...
하...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닌데.
어제, 꽉 채운 2년 만에 전철을 타고, 친구들을 만났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지가 2년이 훌쩍 지난 거다.
한 달 전부터 미리 약속을 잡았고, 오미크론의 유행으로 확진자는 4천 명에서 3만이 넘어가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3일 전만 해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자가진단키트 검사를 하고 갈까, 카페에서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을까 고민했다. 2만이 넘어가고 나니, 약속 장소는 친구의 집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틀 전, 밀접접촉자도 고위험군 위주로 격리시키고, pcr검사 체계도 바꾸는 등 방역에 많은 변화를 알게 되었다. 지인의 친척이 명절에 만난 가족 중에 확진을 받은 사람이 있었음에도 검사에서 음성이 나와서, 격리하지 않고 있다 했다. 접종을 하지 않았음에도.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기사를 보니 하나 둘 방역을 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지인은, 아이의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연휴가 끝났으니 선제 검사받았는데, 무증상 확진이 나와 2시간 만에 귀가 조치하고, 모두들 또 검사를 받아야 했다. 예전 같았으면 일주일 폐쇄일 텐데 월요일에 등원이 가능하다는 걸 보니, 이 또한 달라진 점이라 하겠다. 오미크론이 독감 수준일걸 인정한다는 말은 안 하면서 방역을 하나 둘 푸는 걸 보며, 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어렵게 만난 친구 중 하나는 지난달 맞은 3차 이후로 숨쉬기가 힘들고 가슴이 쪼이는 느낌이 난다며, 병원 예약이 쉽지 않아 아직 병원에 가지 못했다 했다. 그런 친구에게 달라진 방역을 알려주며, 이젠 독감처럼 관리하게 될 거라고 했더니, 친구는 화들짝 놀라며 이렇게 확진자가 폭증하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냐 했다. 친구는 제주도도 가고, 전시회도 가고, 여러 모임도 자주 하는 파워 E 성향임에도 나보다 코로나를 무서워했다. 내가 설명한들, 친구는 납득을 하지 못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코로나 얘기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았는데, 접종 후에 아프다고 하는 친구를 보니 버튼이 켜졌나 보다. 다른 친구들까지 모이고 나서야 코로나 이야기는 잠잠해졌다.
밥도 먹지 않고, 4시간 가까이 육아 수다만 떠들었는데도 힘들지 않았다. 늙은 거 보고 놀라지 말라는 친구들의 말에, 진짜 늙었으면 슬픈 티를 감출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친구들은 그대로였다.
저녁 7시 반 2호선 전철을 탔다. 주말에 사람이 없는 2호선은 낯설었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재우고, 핸드폰을 보는데, 코로나를 독감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브리핑을 했더라. 누군가는 국민들을 방치한다고 생각할 거고, 누군가는 이제야 흐름에 맞다고 할 거다. 같은 걸 보고,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정치에도 코로나바이러스에도 해당된다. 무증상, 경증에 쏟을 여력을 위중증 위주로 했더라면, 예산도 줄이고, 공포심도, 편 가르기도 이 지경이 아니었겠지 싶다.
3개월 전에 코로나는 내가 생각하는 공포보다 덜 했고, 치료약은 없지만 증상 환화 제로도 충분히 나을 수 있었고, 동네병원에서의 원격진료와 약 처방이 가능하다면 덜 혼란스럽지 않을까라고 썼던 적이 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내가 생각했던 일들이 시행되는 걸 보며, 안타깝기도 하고, 이제서라도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모르겠다)
글을 거의 올리지 않는데도, 백신 거부와 코로나 확진으로 내 글을 읽는 분들이 여전히 있다. 2년 전 그 아이와 지금의 이 아이는 분명 다르다. 코로나 팬데믹이 얼른 끝나서 그 글들은 더 이상 읽히지 않길 바란다. (이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