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자주 들여다봤다.
내 감정상태가 어떠한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나 스스로를 그렇게 돌봤다.
죽고 싶다가 죽이고 싶다가 되었고, 살아야겠다 싶어서 정신과에 갔다. 복에 겨운 소리를 해서 혼난 건지 삼신할매는 사람 하나 더 만들라고 아이를 주셨고, 내가 임신했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이 끝도 없이 쌓이는 걸 아는 나는, 임신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불안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차라리 그 편이 태교에 낫겠다고 판단했다. 낳고 나니 힘들었고, 힘들다는 살려주세요로 바뀌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고 싶다가 되었고, 금방 죽어도 괜찮겠다로 바뀌었다.
그게 끝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의 맨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가을이다. 곧 서른의 끝자락이다.
가을을 타는 것도, 마흔이 되는 것이 아쉬운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요즘 계속 나에게 너는 어떠하냐 물어도, 내가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불안하면 나오는 신체증상도, 예민함도, 짜증도, 분노도 없었고, 모두 잠든 밤에 꺼이꺼이 우는 일도 없었다. 잔잔한 강물처럼 고요하고 괜찮은 줄 알았다.
둘째가 요즘 유난히 편식이 심하다. 반찬만 다 먹고, 밥은 남기면서, 한 시간도 안 지나서 배고프다며 간식을 찾았다.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끝도 없이 먹으려고 했다. 매일 반복되는 상황에 어느 순간 불이 붙었고, 분노하는 나를 보고서야 내가 괜찮은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잔소리 한마디만 해도 될 일이었는데, 아주 큰 잘못을 한 것 마냥 큰소리를 내었다.
불안과 우울이 나를 집어삼켜서 엉덩이가 무거워졌을 때가 있었다. 외출하면 기분이 풀린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머리는 나가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한동안 그 우울이 느껴지지 않아서, 괜찮은 거라 생각했는데, 불안과 우울이 나를 집어삼키다 못해, 이 상황에 익숙해져서 내가 우울한 건지 불안한 건지도 모르고 살았던 거다. 신체증상마저도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극도의 불안에 나의 뇌마저도 백기를 들고 지배당하고 있는 것 같다.
하필이면, 이 불안이 코로나에게 꽂혔고, 나는 사실을 알려고 집착했다. 처음은 백신 제조방식으로 시작해서, 백신의 부작용, pcr검사방법의 오류, 코로나 확진이나 사망자수 집계의 오류까지 검색에 들어왔고, 코로나19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아닌데, 공포스럽게 포장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접하게 되었다. 나는 2년 가까이 뉴스에서 보도되는 숫자와 포털사이트의 기사들을 열심히 읽으며 코로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뉴스를 보며, 방역정책에 고개를 갸우뚱하기 시작했고, 백신을 안 맞겠다고 지인들에게 말했을 때 안 맞아도 되는 거냐 되묻는 말에서 더욱더 잘못되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에 집착하며, 무엇이 사실인지 알려고 노력했는데, 내가 알고 있던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력 자체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접한 뒤로는 큰 충격에 빠졌다. 내가 했던 의심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주 치명적이다 라는 전제에서 시작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를 거르려고 면역학, 감염학, 응급의학과 교수들의 글을 찾아 읽었고, 나는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 믿고, 남편에게 얘기했지만, 남편은 그들이 얘기한 것들은 사실이 맞는 거냐 되물었다. 그것 또한 그들의 의견일 뿐이라고.
나는 사실을 알고 싶어, 캐내고 캐낸 것인데 결국은 그 어떤 것이 사실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이라,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사람이라 찾고 또 찾았다. 내가 알아낸 정보라는 것들은 결국 의견일 뿐이라고 말하는 남편과 한참을 소리 높여 이야기하다 결국 울음이 터졌다. 그렇게 안 터지던 울음이 그제야 터졌다. 남편은 코로나에 관련된 어떠한 기사도 글도 읽지 않는다. 왜 내게 사실에 집착하느냐 물었을 때, 음모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2년의 시간을 이렇게 보낸 것이 너무 화가 날 것 같아서 라고 했다. 남편은 사실 확인 보다도 이미 터진 일이고, 다들 처음 겪는 상황이라 이번 일을 계기로 다음 팬데믹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중요한 것 아니냐 내게 물었다. 그리고, 정책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이것이 사기극이라면 누가 이득을 얻는 것이냐 계속 물었다. 나는 사실이 알고 싶은 거야 라고 말하는데도 너의 의심은 오류가 많다고 지적하는 남편의 말투에서 울음이 터졌다. 남편은 정보에 휩쓸리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이렇게 태어난 건지,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모르지만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에게 쉽지 않은 것이 그것 인대.
한참을 떠들고 나니, 정확히 내가 보였다. 둘째에게 화를 내던 나에게서 괜찮지 않음을 느꼈고, 남편과의 대화에서 내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깨달았다.
셋째는 아직도 어린이집 입소대기 신청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다니면, 한동안은 자주 아프다. 나는 아이가 아픈 것 보다도, 밤새 아이의 열을 체크하고, 병원에 다니는 일이 싫다. 8살이 되면 면역력이 좋아져서 잔병치레가 적어진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믿고, 두 아이들이 8살이 되기만을 바랐다. 자주 아파서 6주마다 병원에 들르고, 유행하는 전염병은 다 걸려서 간호하다 내 몸이 아프게 되더라도 열심히 돌봤다. 두 아이로 내 임무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그런 생활을 해야 한다. 그게 싫어서 원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지금의 생활이 변화하는 것이 두렵고 싫다. 사실에 집착하고, 변화가 싫고, 시간에 쫓기고 싶지 않은 게 지금의 나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실수를 하면 하루 종일 자책하느라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도 지금의 나다.
예전에는 혼자 있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이제는 바뀌었다. 세상 모든 것이 3일 동안 멈추고, 나만 혼자 움직일 수 있었으면 한다. 아이들이 내 눈에 보여야 불안하지 않으니.
막내가 8살이 되면 이 불안도 썰물 빠지듯 빠져나갈까. 내가 엄마로 사는 삶은 불안을 견뎌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 아이를 낳고 키울 때마다 불안도 같이 키운다. 살리기 위한 본능일 수도 있겠으나, 그러기엔 이젠 너무나도 무서운 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