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에 첫 아이를 낳은 나는, 셋째를 37살에 낳고도 아직 마흔이 되지 않았다.
두 아이가 다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나는 항상 젊은 엄마로 불렸다. 평균으로 따지자면 보통 32살에 초산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조금 늦으면 35살, 둘째를 낳는 경우는 늦어도 37살 전에 출산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엄마들 무리에서 여전히 막내이고, 많게는 열 살 차이가 나는 언니도 있다.
32살. 어린이집에서 만난 언니가 "자기, 28살 아니었어? 언제 서른이 넘었어?"라고 했다. 이때만 해도 서른이 넘어서,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아기였다.
내가 서른여덟이 되고, 언니들의 앞자리는 모두 4로 바뀌었다. 16개월이 된 셋째를 쫓아다니는 내게 언니들은 "그래도 젊으니까 저렇게 쫓아다니지"라고 한다. 노산에 셋째인데도 언니들은 여전히 막내가 30대라고만 생각하고, 젊음을 상기시켜준다. 나도 새치가 늘고, 꽉 찬 30대인데도, 언니들 앞에서 나도 나이 먹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
나는 누군가의 부러움이 부끄러운 사람이라, 같이 나이 먹은 티를 내고 싶었는데, 나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었다.
"너는 애를 낳고도 그대로네."
분명 칭찬인데, 절대 그렇지 않다고 증명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아니에요." 뒤에 무수히 많은 증거들을 말하지 못하고, 그냥 웃어넘긴다.
젊어서 좋겠다는 말을 밥먹듯이 듣고 사는데, 정작 나는 젊어서 좋은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나이를 먹는 것이 슬프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다. 스물아홉이 서른으로 바뀔 때 나는 기뻤다. 불안이 줄어드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내년이면 서른아홉이 되고, 금방 마흔이 된다. 언니들은 40대의 시계와 50대의 시계는 내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인다고 했다.
아이들의 유산균을 묻던 우리는, 요즘 우리가 먹을 영양제를 묻곤 한다. 눈가의 주름, 희끗한 머리.
막내는 그걸 보는 게 슬프다. 내 나이 먹는 건 언니들이 잊게 해 주는데, 나는 언니들이 나이 먹는 걸 잊게 해 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