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 나가실 수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사주팔자
나는 사주팔자를 믿는 편이다. 믿는다 라고 확고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반 이상은 믿는다.
38년을 살아오고 나니 사주팔자에 적혀있는 삶이 대부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내 인생과 닮아있었다. 일주는 태어난 일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성격이나 살아올 환경을 알아볼 수 있는데, 내 일주는 신묘 일주이다. 공통적으로 얘기가 나오는 것들은, 남편복이 없어 늦게 결혼하는 것이 낫다거나, 시어머니가 간섭이 많다는 것, 붓이나 칼, 바늘을 잘 다룬다는 것,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성실하고, 꼼꼼하고, 의심 많고, 꿈이 크지만, 사업이나 학업은 오래 하지 못한다는 것, 사람에게 한번 등 돌리면 끝이라는 것 정도 생각이 난다. 모친이 아프고, 부모와 정이 없는 것 까지도 다 나와 있었다.
이쯤 되니, 내 인생이 하나의 게임판이고, 나는 거기에 놓인 말이라고 생각됐다. 첫 번째 게임에서 세 가지의 선택권이 주어지고, 그중 하나를 선택해서 살아내야 하는데, 중간중간 나 이외의 인물들이 나타나 공격을 하고, 판을 뒤집기도 하면서, 두 번째 게임에 도착하는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이미 게임판은 다 설계되어있고, 각 게임마다 내게 주어진 선택권의 개수는 다르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여러 가지 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지금 네 번째 게임의 막바지에 있다. 나는 네 번째 게임에서 친구들을 제치고 1등으로 남편과의 결혼을 선택했다. 그로 인해 내게 주어진, 어쩌면 정해져 있을지도 모를 맵을 클리어하기도 하고, 너무 게임이 안 풀려서 나가려고도 발버둥 쳐봤지만, 이 맵은 10년짜리라서 시간이 지날 때까지 그 맵에 머물러야 하는 그런 상상을 해봤다.
나는 이 게임을 종료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종료 시점도 판이 엎어지는 시점도 다 맵에 설계가 되어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답답하고 화가 나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진다. 내가 벗어나려고 해도, 인생은 그렇게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38년을 살아온 내가 내린 결론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요즘은 그럭저럭 살만해서 이러는 걸까.
아, 나는 용한 꿈은 꾸지 못한다. 그런 꿈은 게임에서 힌트로 주는 것 같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의 예고편 같기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시간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힌트를 얻는 방법은 잘 모르겠다.
엉뚱한 상상을 하는 것도 신묘일주의 특징이다.
예술가의 기질이 있지만, 대중적이기는 힘들다고 했다. 심오하다나.
다음 게임에서는 내가 심오한 예술을 할 수 있는 맵을 선택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