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을 잃은 자의 절규

후각을 잃어도 살은 빠지지 않는다.

by 에토프

후각을 잃은 지 열흘 하고도 이틀이 지났다.

미각은 아주 천천히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듯 변화가 느껴지는데, 후각은 돌아올 기미가 안 보인다.


퇴원 후, 자가격리를 끝내고 야심 차게 주방에 다시 출근을 했다. 간이야 맛을 봐줄 사람이 셋이나 있으니 일단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온라인으로 생선 맛이 진한 어묵을 시키고, 평소 하던 대로 끓는 물에 한번 데친 어묵에 파, 마늘 약간 , 쯔유 콸콸콸, 소금 두 번 탁탁, 후추 한번 탁, 국간장 한 스푼, 연두 주황색 한 스푼을 넣고 어묵이 냄비를 폭파시킬 것 마냥 불어날 때까지 끓여주고, 불을 껐다. 국자로 국물을 떠서 색을 확인했다. 늘 보던 진하기였다. 남편을 불러 맛을 보게 했다. 맛있다고 했다. 남편은 맛을 잘 아는 사람이지만, 상한 음식도 잘 먹는 사람이라 신뢰도가 높지는 않다. 아이들에게 어묵탕과 갈비양념에 재운 돼지고기를 볶아 상추와 함께 한 끼를 차려주었다. 얼마 만에 내가 한 밥을 먹이는 건지... 냉큼 딸아이에게 어묵탕의 맛을 물었다.


"엄청 맛있어."


오랜만에 먹는 엄마의 음식이라 그런지, 진짜 맛있었던 건지 헷갈렸지만, 16개월을 산 막내도 어묵 두 조각을 뺏어 먹은 거 보면 정말로 맛있게 잘 끓인 듯했다.


맛도 한번 안 보고, 달인처럼 툭툭 넣어 끓였는데도 늘 먹던 어묵탕의 맛이라니, 뿌듯하면서도 후각이 돌아오지 않아 계속 이렇게 나의 감만 믿고 요리를 해야 되는 상황이 이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음식이라는 게 한 가지 맛이 아니라 여러 가지 맛이 섞여서 음미하게 만드는 즐거움을 줘야 하는데, 지금의 나는 그 여러 가지 맛 중에 한 가지 맛만 느낄 수 있다. 김치와 빨간색의 국들은 모두 같은 맛이 나고, 보쌈고기에서는 비계의 느끼함만 났다. 감자칩을 먹어도 짠맛이 느껴지지 않다가, 소시지와 체다치즈가 들어간 빵을 먹으니 이번엔 짠맛만 났다. 눈감고 먹으면 무슨 음식인지 모를 정도였는데, 이제는 조금 눈감고 먹어도 어떤 음식인지 찍어서 맞출 정도까지는 돌아왔다. 식감과 한 가지 맛으로 어느 정도는 알겠다.

그 와중에 치커리와 바나나는 온전히 그 아이들만의 맛이 났다. 이런 아이들을 발견하면 입에 넣는 순간 느낌표가 반짝 뜬다.


그런데, 후각은 아직도 무소식이다. 냄새가 안 나는데 맛이 나는 것도 신기하고, 간장에 계란을 넣고 팔팔 끓여대는데도 간장 냄새를 전혀 맡지 못하는 것도 신기했다. 평소 너무 진해서 잘 쓰지 않던 알코올 티슈의 향마저 저 멀리 바람을 타고, 아주 살짝 지나가는 향으로 느껴지고, 페퍼민트 향이 나는 치약을 콧구멍 아래에 가까이 대고 킁킁거려도 사나흘 지난 파스에서 나는 향처럼 아주 희미하게 느껴진다. 3주 만에 들뜬 마음으로 마신 맥심 모카골드는 전혀 향이 나지 않았다. 향이 나지 않는 커피는 맛도 없었다. 커피 한 모금에 물을 부은 것처럼. 눈을 뜨고 마셔도 이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열심히 검색창에 후각을 되살리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후각 재활이라니. 레몬, 페퍼민트, 계피, 장미, 유칼립투스 같은 아로마 오일을 이용한 재활방법이 눈에 띄었다. 내일부터 치약과 귤을 이용해서 열심히 나의 후각을 되살리려 한다. 먹고 싶은 음식이 하나라도 생각나면 삶의 의지가 생기는 단순한 나에게, 후각 상실은 너무나 치명적인 후유증이다. 아이 낮잠 재우고 마시는, 커피 한잔의 여유마저 코로나로 잃게 생기다니 가슴이 먹먹하다

버터향이 나는 스콘도 그립고, 배부른 배도 배고프게 하는 라면 냄새도 그립고, 형아랑 누나를 소리 지르며 도망가게 만드는 막내의 응가 냄새도 그립다. 돌아와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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