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을 거부했다.

550만 명 중의 한 명 접니다.

by 에토프

한동안 생각이 멈춰있었는데 오늘 뉴스를 보다 빵 하고 생각이 터져버렸다.



저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선택을 선동하는 글도 아닙니다.

단순하게 개인이 선택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쓰고 싶었을 뿐입니다. 백신 접종의 선택은 개인의 몫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코로나.

코로나에 대해 얘기하자면, 나의 출산 스토리나 시댁 에피소드만큼 떠들 얘기가 많다.



코로나란 녀석에 대해 말하기 전에 내가 겪은 신종플루에 대해 먼저 말해야 한다. 마지막 직장이었던 학원에서 평소 비염으로 눈밑이 까맣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그날 기침을 연신 해댔고, 아이가 걱정된 나는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 괜찮냐 물었다. 이틀 뒤, 그 아이는 신종플루에 걸렸고, 나 역시 이틀 뒤 목이 따끔거리고 미열이 있어 응급실에 방문하고, 나무젓가락 길이의 면봉을 쑤셔서 검사를 했다. 나 역시도 신종플루에 걸렸다. 타미플루를 받기 위해 이틀 뒤 다시 대학병원에 방문해야 했고,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3시간을 대기한 끝에 컨테이너 박스에서 의사와 진료를 보고 약을 받아왔다. 증상이 심하지 않던 나는 약을 받아온 그날 저녁부터 4일을 누워서 지냈다. 집에 체온계가 없어서 열이 몇 도인지 알 수 없었다. 바이러스로도 충분히 아픈데, 타미플루를 먹는 순간 거짓말 좀 보태서 나는 배를 타고 먼바다로 대게 잡이를 나가는 정도의 울렁거림을 겪었다. 약 먹는 것이 더 힘들었다. 결국 마지막 한 알을 먹기 전에 몸이 가벼워져서 복용을 내 맘대로 중단했다. 그 당시에 뉴스를 즐겨보지 않았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대라 신종플루에 걸리기 전에 나는 무지한 상태로 내 몸을 바이러스에게 내주었다. 주위에 아무리 봐도 나말고는 신종플루에 걸린 사람이 없었다. 내가 느낀 공포는 대단했는데,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없었다. 약을 받기까지 3일이 걸렸고, 치료제가 있음에도 나는 그 시간이 불안했다. 그리고 힘들게 받아온 약을 먹기 위해 꾸역꾸역 밥을 먹었는데, 낫게 해 준다는 그 약이 끝도 없이 바다 구경을 시켜줘서 내가 낫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불안에 떨며 집에서 공사현장에서 쓰는 방진마스크를 쓰고 누워만 있었고, 다행히 우리 가족 중에는 내가 바이러스를 옮긴 이가 없었다.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

뉴스에서는 중국의 원인불명 폐렴 환자 증가에 대한 소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었고, 나는 그때마다 미간을 찌푸리며 찜찜해했었다.

첫째 아이를 낳을 때쯤. 그러니까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 밝혀지기 전, 원인불명의 폐렴 증상으로 산모들이 뉴스에 자주 나온 적이 있었다. 원인불명. 나는 이 단어가 매우 싫다. 그래서인지 중국의 그 소식을 듣고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2020년 설을 지내고 집에 돌아온 얼마 후 그 원인이 무엇인지 차츰 정체를 드러냈다. 그리고 나는 또 공포에 빠졌다. 나는 임신 4개월 차였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아이가 둘 있으며, 그 녀석은 밝혀진 것도 없고, 백신도 치료제도 없었기 때문이다. 치료제가 있었던 신종플루도 그렇게 겨우 이겨냈는데, 코로나를 알게 된 순간 나는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온갖 정보들이 쏟아져서 신종플루를 겪을 때보다 안심이 돼야 하는데도,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이 심해졌다.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고, 접촉을 피하는 것뿐이었다. 두 아이를 1년 가까이 가정 보육하고, 실내는 되도록 가지 않았고, 마트나 산부인과 진료 같이 꼭 필요한 외출이 아니면 집에만 있었다. 남편이 근무하는 곳은 매일 천명이 드나드는 곳이었고, 남편이나 아이들 중에 코로나에 걸리면 우리 때문에 피해 보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연결고리를 끊고 싶었다. 우리 때문에 자가격리에 뺏기는 시간은 무엇으로도 보상해 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전면 등교가 시작되고 나서야 학교에 보냈지만, 다른 외출은 여전히 그대로 유지 중이다. 식당에서 식사한 적이 없을 정도다. 아마도 마지막 외식이 2020년 설 연휴 바로 전이었을 거다. 많이 빡빡하게 굴었다. 올해 설에는 친정부모님이 마스크를 쓰신 채 세배만 받고 물 한잔 드시지 못하고 쫓겨나셨다.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정부가 나서서 며느리들 시댁에 못 가게 한다고, 진짜 시댁에 안 가는 며느리는 못 배워 먹은 거라 욕할 때. 나는 친정부모님도 그렇게 맞이했다. 나는 그렇게 방역을 해나갔다.


치료제가 없어서, 자가격리로 누군가의 시간을 뺏는 게 싫어서, 선별 진료소에 줄 서서 시간을 보내는 게 싫어서, 코로나에 걸리고 어떤 후유증이 남을지 전혀 알 수 없어서. 그리고 내가 키워야 할 세 아이가 있어서. 그래서 나는 두려웠다. 죽겠다 마음먹었을 때는 잠시 잊었지만,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는 나는 절대 이 아이들과 떨어질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내가 백신을 거부했다.

누구보다도 일상생활을 포기해가며 연결고리를 끊으려 애쓴 내가 백신을 맞지 않기로 했다.


첫째, 나는 내 몸상태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 셋째를 출산하고 1년쯤 됐을 때, 새끼손가락과 손바닥이 이어지는 부위에 통증이 발생했다. 열감이 있었고, 주먹을 쥐지 못했다.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있어, 병원에서 자가면역질환에 관련된 검사를 받고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았다. 선생님은 정확한 병명을 진단 내리지 않으셨다. 유력한 것이 있으나, 약을 먹고 호전되었으니 다음에 또 발생하면 초음파를 보자고 하셨다. 스테로이드. 나는 스테로이드를 먹으면 몸에 느껴지던 모든 통증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매우 맑은 정신과 몸을 갖게 된다. 그 말은, 약을 먹지 않았을 때, 정확히 어떤 질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백신을 안심하고 맞을 정도의 컨디션은 아니라는 얘기다.

거기다, 첫째 아이가 입학한 해에 앓은 폐렴 또한 특이했다. 고열은 어느 정도 잡혔으나 여전히 근육통에 빈맥이 있어, 큰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폐렴이 발생한 위치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심장과 가까운 쪽이라 폐렴임에도 기침보다는 가슴통증과 빈맥이 고통스러웠다. 그 뒤로 나는 피곤한 날이면, 자세가 바뀔 때마다 귀에서 혈액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슉슉하고 소리가 난다.


둘째, 백신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는 생물학을 전공했다. 수학강사의 길로 접어들자마자 모든 생물학 지식을 머리에서 지웠지만... 학생일 당시에 백신이 항체 형성을 위한 발명품이라는 생각 외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이들 키우며 끝이 보이지 않는 예방접종을 하면서도, 내 아이가 아프지 않게 하려 맞추는 것이라는 생각만 했었다. 그러다 독감백신을 맞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독감백신을 맞아도 우리 아이들은 서너 번 독감에 걸렸다. 아프지 않으려고 맞혔는데, 결국은 아팠다. 유료든 무료든 맞아도 걸리니 허탈했다. 그런데 이게 우리 집만의 해프닝이 아닌 거다. 그러고 나니 백신이 개인이 아니라 다수를 위해, 전염을 막기 위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혔다. 내 아이가 걸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집 아이도 안 걸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실상은 내 아이도 다른 집 아이도 걸렸지만.

오랜 시간 안전성 인정받고 맞아온 독감도 이러는데, 코로나 백신은 오죽하겠나 싶었다. 앞다투어 백신의 효과를 퍼센트로 기사에 내기 바쁘고, 서로 다른 백신보다 이것에 효과가 높네, 부작용이 적네, 변이에 효과가 좋네, 항체 유지기간 기네 별별 기사가 쏟아진다.

백신은 치료제가 아니다. 백신을 믿고 있어서는 안 된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나서 확진자는 2천이 우습게 나온다. 종종 마스크를 안 쓰고 엘리베이터에 타는 사람들도, 집 앞에 나가는 사람들도 보이더라. 전염률을 낮추려고 백신접 종률에 목숨 거는데, 숫자는 그런 결과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게다가, 나는 아주 마음 아픈 소식을 두 번이나 접했다. 하나는, 백신 접종 뒤 하늘나라로 가신 분. 하나는 백신 접종 뒤 뇌출혈로 수술을 기다리다 의사 선생님이 없어 뒤늦은 수술 뒤에 아직도 병상에 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 두 분 다 나보다 젊은 미혼의 여성. 나의 지인의 지인의 지인들이다. 세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일까. 그래서 이런 소식이 들리는 걸까. 한동안 착잡했다. 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다.


처음엔 1차만 맞고 2차는 맞지 않으려고 했다. 접종 간격이 너무 짧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아는 언니가 젊으니까 맞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며, 뇌출혈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생각해보겠다 했다. 그런데, 백신 이상반응 숫자가 늘고, 인과성도 밝히지 못한 채 사망자가 늘어나는 걸 보니 또다시 고민에 빠졌었다. 두 분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나서 나는 두 가지 선택을 저울질해야 했다.


코로나에 걸려서 죽을 확률과

백신을 맞고 죽을 확률.


외출도 거의 안 하는데 코로나에 걸려서 치료센터에 있다가 증상이 심해져서 병원으로 이송되는 것, 내발로 백신을 맞는다고 가서는

백신을 맞고 일주일도 안돼서 쓰러지는 것.


어느 것이 억울할까. 나는 전자가 후자보다 낫다고 판단했다. 백신 맞기 전 내 상태를 면밀히 기록하고, 백신 후의 사고가 나서 인과성을 증명해내 인정받고, 내 목숨 값을 받아 내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럼 너무 억울하겠지. 아이들을 남겨두고 눈이나 감을 수 있을까.



뉴스에서 단독이라며 위드 코로나의 시작을 알렸다. 위드 코로나는 백신 접종 시작부터였고

. 위드 코로나가 긍정의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우린 코로나에 이기지 못했다.

나는 백신을 맞지 않았지만, 연결고리는 어떻게든 이어지지 못하게 지켜낼 거다.



불이익이 너무 강력해지면 또 생각이 바뀌려나.

백신 정량의 반만 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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