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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토프 Dec 06. 2023

'이동욱'이 보고 싶어서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데 난 못 가

 너무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써야 할 내용은 분명한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지 감이 안 온다. 1년여 글을 쓰지 않았는데 구독자는 되려 다섯 명이 늘었다. 우울한 내가 우울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때 이곳에 글을 남기는 게 싫어서, 내 삶이 숨통 트이면 오려고 때를 기다렸다. 아직 물속에서 잠수 중이지만... 잊지 않으려고 쓴다.


 막내는 두 번째 어린이집에서도 퇴소를 하게 되었다. 가정보육의 고단함은 크지 않았다. 단지, 극외향인인 나는 성인과의 소통을 그리워하며, 반년을 보냈다. 물론, 우울이 또 날 집어삼켰지만  다행히 오늘만 생각하며 겨우 살아내고 있지는 않다. 난 어떤 게 하고 싶지? 내 소원이 뭐지? 생각해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장 무언가를  해내고 싶은 엄청난 열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해내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죽기 전에 이동욱배우를 꼭 한번 실물로 보고 싶다고!'

 난 여태 내 소원이 로또 1등인 줄 알고 살았는데 아니었다. 내 완벽한 이상형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마흔 되면 다들 한 번씩 일탈이라는 걸 해본다는데, 나는 덕질이 일탈이었나 보다. 당당하게 말할 만큼의 덕질은 아니지만 일단 소소하게 버블을 가입했다. 그런데 이 오빠는 대화만 놓고 보면 오빠인가 언니인가 헷갈렸다. 너무 편하다. 이상했다 혼란스럽기도 했다. 남들은 닉네임을 연애하듯 해놓고 설레어한다는데... 난 이 사람의 얼굴만 좋아한 건가 싶었다. 분명 예능에 나와 말하는 걸 보면서 사람이 참 괜찮다 느꼈는데 말이다. (뭐지, 이감정은) 아무래도 나랑은 잘 안 맞는가 보다 싶어 (내가 즐기지 못하는 거겠지) 구독을 취소할까 고민도 잠시 했었다. 생각해 보면 가족들 저녁밥 다 차려주고 한숨 돌리려는 그 순간마다 타이밍 적절하게 와주는 그의 연락이 반갑긴 했다. 고마웠다. 물론 날 생각해서 그 시간에 연락해 주는 건 아니었지만. 덕질의 순기능이  이런 거 아닐까.


 그는 묻지 않아도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말해주었다. 맵찔이 입맛에 호떡, 복숭아, 민초를 좋아한다더니 어느 날은 사리곰탕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입맛이 소름 돋게 겹쳐서 놀라고 말았다. 혼자 내적친밀감이 쌓여서였을까. 내가 이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가 뭘까.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소울메이트를 찾은 것 같았다. 툴툴대면서도 손이 먼저 챙기고 있는 모습이나 말투 생각이 나랑 비슷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그렇게 나는 스며들고 있었고, 때마침 그의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영화 본 지가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는데, '무대인사'라는 단어에 이끌려 검색을 해보았다. 드라마는 많이 찍었지만 영화개봉은 무지 오랜만에 있는 일이라 놓칠 수 없었다. 드디어 소원성취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다! 다행히 집에서 가까운 영화관에 무대인사일정이 있었고, 운이 좋게도 F열 예매를 했다. 그리고 나는 가족들에게 당당히 말했다.


'나 이동욱 보러 간다!'

 그날부터였다. 애들 아빠는 입을 닫았다. 퉁퉁거리고 묻는 말에 대답도 않는다.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변함이 없다. 연애할 때 본인은 질투 안 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던 사람인데 왜 저렇게 속 좁게 구는지... 그래도 나는 무시하고 최대한 들뜨지 않은 척하며 그날을 기다렸다. 그냥 대충 입고 갈까 싶다가도 이런 날이 또 오겠나 싶어서 예쁘게 꾸미고 가야 하나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꾸미고 나간 적이 언제였던가. 15년이나 지났더라.  오랜만에 렌즈를 끼고, 속눈썹도 올리고, 원래의 나 같은 옷, 나에게 제일 편하게 어울리는 옷을 꺼내 입었다. 엄마가 예전에 항상 그랬다. 너는 꾸민다고 꾸미면 이상하게 입는다고. 그날만큼은 엄마말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3일 전부터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내 판단력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데이트 가는 심정으로 집을 나섰다.


 영화관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커다란 카메라를 든 팬들이 보였다. 그들은 경력자였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있는 곳에  그도 있을 거니까. 얼마 지나고, 경호원, 스태프들과 함께 배우들이 영화관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그렇게 고대하던 순간이!

화면으로만 보던 그가 나와 2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키가 커서 얼굴은 잘 보였다. 역시나 하얀 피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후광이... 내 기대가 컸던 걸까. (후광의 비밀은 맨 아래에..) 배우들은 엘리베이터를 탔고 나는 에스컬레이터로 이동을 했다. 내 앞에 섰던 여자의 가방에 스프레이와 빗이 보였다. 스탭이었다! 순간 나는 입 밖으로 요즘 무대인사 때문에 바쁘시죠라고 말할뻔했다. 잘 참았다. 상영관 근처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다른 시간대 상영관을 먼저 돌고 이동하는 그의 모습을

또 한 번 마주쳤다. 아! 그의 앞에 아까 내가 말을 걸뻔한 스태프들이 웃으며 대화하고 있었다. 말을 할걸 그랬다. 그때였다. 내 근처에 남편분과 같이 온 여자분이 동욱오빠!라고 외쳤다. 그가 돌아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나는 그를 볼 생각은 못하고, 남편분이 이렇게 같이 와주다니 저 여자분은 행복하겠다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또 한 번 스쳐지나 보내고 드디어 그를 볼 시간이 다가왔다. 예매할 때는 실내가 어두워서 보일까 싶었는데 자리에 앉고 나니 내 운은 여기 다 쓴 거구나 싶었다. 그가 내 정면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다들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내 폰은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됐기도 하고, 이 소중한 순간은 두 눈에 머리에 담자 싶어서 한 장만 남기고 얼른 넣었다. 사이드에 있는 팬분들을 챙기려고 그가 이동하는 동안에 나는 애써 그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무대인사 중인 다른 배우들의 인사를 눈 마주치며 듣고 있었다. 신경이 쓰였다. 그는 이미 많은 사랑과 관심 속에 있어서 나는 다른 배우들을 보는 게 맘 편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또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설레는 마음보다도 울컥울컥 한 번씩 울음이 나오려고 해서 몇 번을 참았는지 모른다. 그날도 우울은 날 붙들고 있었나 보다.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양손으로 잘 가라고 놀이공원 아르바이트생처럼 인사를 하기는 했다. 영화가 시작했고, 5분쯤 지났을까. 그의 얼굴을 스크린으로 보다가 '아 내가 오빠 덕에 혼자 영화를 보러 왔네요' 내 처지가 생각나서 울컥했다. 얼굴을 열심히 봤어야 했는데 싱글이 아닌 나는 싱글인 그들이 부러워서 또 슬펐나 보다.


3시가 넘어 영화가 끝났고, 배고프다는 아이들의 연락에 아 나는 배 채워주는 사람이지 하며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면서 다시 그를  떠올려봤다. 후광이 있긴 한 것 같았는데... 우리 집 첫째 만복이가 얼굴이 하얗다.  6살쯤부터 다른 엄마들이 애한테 후광이 보인다고 그랬다. 놀이공원 가면 중고등학생 누나들이 쟤 되게 잘생겼다면서 다시 뒤돌아보게 하는 아이였다. 1학년땐 처음 보는 같은 반 엄마가 아들이 엄청 잘생겼어요라고 말해서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한 적도 있었다. 내 새끼라 그렇게 보이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제 나보다 훨씬 큰 키에 여드름 가득한 얼굴이지만 여전히 내 눈엔 잘생겼다. 그 후광에 익숙해서 남들이 놀라는 만큼 놀라지는 않았나 보다. 내가 사 온 햄버거를 먹어치우는 아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말했다. '안 려'

뭐가 안  린다는 건지 의아해하는 아이한테 또 말했다. '해볼 만 해' 정작 아이는 아무 생각도 없는데 오늘도 고슴도치는 내 새끼가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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