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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토프 Dec 12. 2024

나는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너와 닮은 누군가를 보니 엄마의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져 이렇게 글을 쓴다.


가루약이 너무 써서 엄마가 하나씩 네 손에 쥐어주던 마이쮸를, 어느 날은 엄마가 보지 못했던 찰나를 틈타 두 개를 잡아서 도망가버렸지. 무언가 빠르게 지나가는 너의 손사이로 마이쮸가 한 개가 아니었단 걸 직감한 엄마는 빠르게 너의 손을 잡았지. 너의 조그만 손에는 마이쮸 한 개가 있었지. 엄마가 널 의심한 건가 싶었을 때, 누나가 말했지.

엄마~얘 입에 뭐 있어 씹고 있는 거 같은데.


아들아


세상에 완벽한 거짓말은 없단다.

너를 보고 있지 않아도 너의 생각을 이미 읽고 있는 사람도 있고, 네가 보지 못해도 너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고, 네가 혼자 내뱉는 말을 지나가다 듣게 되는 사람도 있단다.


얼마 전 첫눈이 너무나도 많이 내려서 아빠 엄마 셋이 놀이터에 가서 눈사람을 만들었었지. 네가 작은 손으로 얼은 눈을 뭉치는 게 어려워 보이니 어떤  형아가 와서 자기가 만든 눈뭉치를 선물로 주었어. 그런데 너는 본체만체하고 지나가버렸지. 그래서 엄마는 그 형에게 미안해 동생이 혼자 만들고 싶은가 봐 고마워~라고 말했단다. 그 뒤에도 형은 한 뭉치를 엄마에게 더 주었어. 그 눈뭉치는 돈을 주고 학원을 다니면서 배울 수 있는 그런 것들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누구에게는 없을 수도 있는 그런 거란다.

엄마의 마음이 아파하는 동안 너는 아빠가 만든 작은 눈사람을 부숴버렸지.


"왜 아빠 눈사람을 부순 거야?"


"아빠 부수고 같이 새로 만들고 싶어서 그랬어."


"아들아, 새로운 건 아빠 눈사람을 부수지 않아도 만들 수 있어. 그리고 아빠가 만든 거니까 아빠한테 물어봤어야지. 엄마도 말도 없이 네가 만든 걸 부수면 네 마음이 어떨까? 다시 한번 물어볼게 사실대로 말해. 아빠 눈사람을 왜 부쉈어?"


하지만 엄마, 아빠는 알고 있었지. 넌 새로운 눈사람이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니야. 눈이 얼어서 잘 뭉쳐지지 않아서 마냥 작은 덩어리가 맘에 들지 않았지. 아빠의 눈사람도 기껏해야 어른주먹만 했지만, 넌 그것도 싫었어. 너는 완성하지 못했으니까. 그럴 땐 형의 도움을 받아도 되고,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해도 괜찮아. 그런데 넌 다 혼자 해내고 싶었지. 엄마가 눈이 잘 뭉치는 방법을 알려줘도 듣지 않았어. 넌 네 손에 들린 네 앞에 보이는 너의 눈뭉치에만 빠져 있었거든.


다시 물어본 물음에도 넌 똑같이 대답했고, 결국 우린 집으로 왔지. 네가 더 놀고 싶었다면, 아니 정말 새로운 놀이가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너는 더 놀고 싶어요라고 했을 거야. 그런데 넌 순순히 집으로 들어갔어.


아들아


사람은 완벽하지 않아.

계속 실패하고, 노력하고, 깨달으면서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거야. 혼자 너의 시선에 머무르고, 다른 사람에게 귀를 닫고, 너의 입으로 진심이 아닌 말들만 나오게 되면 결국 사람들 속에서 살 수 없어. 많이 외로워질 거야. 넌 사람을 사랑하니까 더 많이 외롭겠지. 세상의 주인공이 너이길 바라고, 너에게 평가를 하거나 지시, 명령을 내리는 사람에게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조언을 싫은 소리라고 느끼지. 그래도 나아진 게 있다면.. 꼭 너의 눈으로 확인해야 납득되던 게 말로도 설득이 되는 데에 1년이 걸렸어.


엄마는 너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많아.

세상의 주인공이 네가 아니라는 거,

사람들 모두가 너를 좋아할 수는 없다는 거,

속상하고, 슬프고, 짜증 나고, 아픈 것이 다 분노가 아니라 각자 다른 감정이라는 거.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없다는 거.

네가 갖고 싶을 걸 못 가질 수도 있고, 네가 먹고 싶을 걸 못 먹을 수도 있고, 네가 사고 싶은 걸 못 살 수도 있다는 거.

요즘은 ' 하지 마 불편해 내 마음도 소중해'라고 가르치더라. 엄마는 너에게 그렇게 가르칠 수가 없어. 그래서 네 마음은 아주 조금 소중하고, 다른 사람은 아주 많이 소중하다고 말해주었지. 넌 이미 네 마음만 매우 많이 소중하니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네가 깨달을 때까지 엄마는 너에게 하루도 빠짐없어 말해고, 알려줄 거야.


아들아

 

화가 나서 너 때문이야! 삿대질을 하고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친구들은 네가 화가 났다는 걸 알고 있어. 너의 고함과 비명에 친구들은 놀라고 불안하겠지. 사람이 살면서 화를 안 내고 살 수는 없지. 그렇지만 너의 분노 때문에 많이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해.


아들아


가끔은 인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너를 낳았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어서 괴로워.

가끔은 사랑보다 책임감에 휘둘려 너를 보살필까 봐 두렵기도 해. 그래도 엄마니까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을게.


마지막으로 아들아.

넌 절대 정치는 하지 말아야 한다.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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