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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재 Jul 03. 2022

유한한 아름다움의 가치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A thing isn’t beautiful because it lasts.”


오락 영화에 가까우면서도 진득한 대사들이 많은 히어로물인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등장하는 AI 캐릭터 ‘비전’이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을 서술할 때 말했다. “아름다움은 영원함으로 그 가치가 매겨지지 않는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그 소중함을 느끼기가 어렵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모든 것은 그 존재가 유한하기 때문에, 그 한순간의 가치를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에 아름답다고 한다. 인스타에 올리는 예쁜 휴양지든, 애인의 아리따운 얼굴이든, 술에 취해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흐릿한 한강의 풍경이든. 그 모든 아름다움은 영원히 누릴 수는 없는 것이라고 우리 모두 자각하고 있다.


그 사실을 어쩌면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한 시점부터 우리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클라라와 태양>은 공교롭게도 비전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로봇에 가까운 ‘클라라’를 통해 비슷한 교훈을 전한다. 여기서는 인간을 모방하며 친구가 되어주는 인공 친구(AF, Artificial Friend) 클라라가 병약한 소녀 ‘조시’를 만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아름다움의 유한함에서 오는 가치를 시사한다. 그리고 ‘사랑’을 의미하는 이 아름다움은, 열네 살 소녀의 조심스런 접근에서부터 딸이 낫기를 바라는 맹목적인 희망, 갈림길을 걷게 되어도 인연의 가치를 망각하지 않는 성숙함이라는 여러 형태로 작중에 등장한다. 그리고 이 모든 형태를 담습한 인간의 행동을 학습하는 어린 클라라를 통해, 소설은 사랑이란 무엇인지 고찰하게 만든다.


접근

작중에서 사랑을 드러내는 첫 대사는 14세 소녀 조시가 AF 가게에 전시된 클라라를 만나게 되면서 등장한다.


"너 올 거지? 만약에 엄마가 된다고 하면? [...] 네가 원하지 않는데 오는 건 싫어. 그러면 불공평하니까. 나는 네가 오면 정말 좋겠지만 네가 조시, 나는 싫어, 하고 말하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엄마한테 안 된다고 말할게. 하지만 너도 오고 싶지? 응?" - <클라라와 태양>


열네 살 남짓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녀는 벌써부터 유한한 사랑의 연약함을 알고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금새 바스라질 수도 있단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건 소녀가 ‘향상된 아이’가 된 이후로 병약해져 죽음의 문턱에 가깝게 살아왔기 때문에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줄곧 체감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중에서 그리 중요하지도 않고, 짤막한 구절이었지만 그 짧은 대사를 통해 소녀의 진중함이 느껴졌다.


"나를 향해 환하게 뿜어나오던 그 빛은 무엇일까? 오래 전의 그 나비처럼 그토록 연약한 빛은 아닐까? 잡으려는 생각이 혹시 아름다운 그 빛을 죽이게 되지는 않을까? 사랑은 왜 두려움과 함께 오는지 그때 처음 알게 됐지.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아름다운 사랑은 망가져버리니까. 그리고 다시는 그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없으니까. 그게 사랑이라면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안 돼." - <첫사랑>, 김연수



김연수의 <첫사랑> 속 구절이 떠올랐다. 인간의 조심스런 접근에서 느껴지는 진중한 사랑. 그리고 한 번의 망가짐을 겪어본 후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 사랑에 대해 배우게 되는 <첫사랑>. 마치 인생을 배워가듯, 클라라는 상대의 허락을 원하는 진중한 사랑의 감각을 조시에게서 처음으로 터득했을 것이다.



희망

'앞서 말한대로 조시는 병약한 소녀다. 딱히 명료한 치료법도 없고, 정성 어린 간병만이 어미니인 크리시, 가정부 멜라니아, 에이에프 클라라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클라라는 태양광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 받는 에이에프였는데, 가게에 전시된 시절 길거리에 누워 꼼짝도 않는 거지와 강아지가 햇빛을 쬐자 살아나는 모습을 보고 태양이 조시에게도 비슷한 영향을 줄 것이라 막연히 희망하게 된다. 매연을 내뿜는 쿠팅스 머신을 파괴하면 태양이 보답으로 조시를 낫게 해줄 것이란 엉뚱한 사명감도 가지게 되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조시의 소꿉 친구인 릭, 그리고 조시의 아버지 폴에게까지 조시를 낫게 할 실낱같은 희망이란 명목으로 자신을 돕게 만든다.' <클라라와 태양>



쿠팅스 머신을 파괴한다는 일종의 임무는 작중에서 하나의 플롯 장치로 작용한다. 그러나 정작 쿠팅스 머신을 파괴하는 부분은 제대로 묘사되지 않고 생략된다. 작가가 고의로 그 부분을 누락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결국 클라라의 미션이 중요했던 게 아니고 조시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정성을 부각하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본다.



인간은 비합리적인 존재다.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지 않더라도 소중한 사람이 잘되길 바라면서 매일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미지의 존재에게 기도를 올리고, 타인이 보이면 헛짓거리일 수도 있는 미신에 집착하기도 한다. 그리고 극적인 원인 불명의 계기로 상황이 호전되면 우리 인간은 그 정성을 쏟아부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혈액암에 걸려, 치료 없이는 최대 6개월까지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어머니의 심정이 이랬을까. 곁에서 어머니가 불경을 필사하는가 하면 남몰래 숨죽여 기도를 올리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신도 미신도 믿지 않았던 내가 어릴 적 자주 다니던 법당에 있던 불상이 옅은 미소를 띄운 걸 얕은 잠결에 본 적도 있다. 아직도 내 병의 완치와 그 기묘했던 체험을 엮기엔 그 인과 관계를 뚜렷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마 영원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때 지인들이 보내줬던 수많은 헌혈표를 생각하면, 초자연적인 뭔가가, 나를 응원하는데 할애된 그 모든 마음 씀씀이가 나를 낫게 하는데 보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클라라가 태양에게 전했던 호소, 그 막연한 희망이 정말 조시의 호전과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었을까. 그 초자연적인 사랑이 정말 영향력이 조금이라도 없었을까.




인연

소꿉 친구로서 어릴 적부터 함께하는 계획을 세운 조시와 릭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갈 길을 걷는다. 그런 둘의 사랑이 와해될까 걱정하던 클라라에게 릭은 자신과 조시가 떨어진다 한들 그 전에 함께 세운 사랑은 여전히 내면에 살아갈 것임을 암시한다. 소꿉 친구가 유아기부터 청소년기를 거치고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서며 백발의 노년이 될 때까지 함께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유한했던 사랑을 과연 무색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노년까지 그 사랑이 변화 없이 올곧게 직행해왔다면 그들의 인생이 발전할 수 있었을지, 그런 의심이 든다. 모든 인연은 유한하다. 손을 잡은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존경이든, 20대 청춘의 열렬한 교감이든, 자식의 독립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모성애든. 그 모든 사랑에는 마냥 철로로만 쭉 달릴 수는 없는 종착지가 있다.


"사람이 자발적으로 외로움을 선택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외로움을 피하려는 소망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 <클라라와 태양>


릭의 재능이 만개할 수 있도록 작은 집을 떠나 대학에 진학하길 원하는 릭의 어머니 헬렌의 모성애는 본인의 외로움을 자처한다. 사랑하지만 그렇기에 보내야 하는, 그런 사랑의 모순이 곧 유한한 인연의 아름다움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 인연을 공유했던 사람들은 모두 그 순간에 느꼈던 사랑을 영원히 가슴 한켠에 품고 살아가게 된다. 인간을 옆에서 지켜보며 성장한 클라라는 태양과의 소통을 통해 그 깨달음을 얻고,


사실 내가 해에게 호소하고 있을 때도 해는 조시와 릭이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럼에도 둘의 사랑이 지속되리라는 것을 알았을 수 있다. 해가 나한테 사랑이 뭔지 아이들이 과연 알겠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도, 해는 답을 알면서 나더러 한번 생각해 보라고 질문을 꺼낸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때 해는 커피잔 아주머니와 레인코트 아저씨 생각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클라라와 태양>


마지막에 재회한 ‘인간’ 매니저에게 역설적으로 본인의 깨달음을 공유한다.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에게 계속 찾고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없더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카팔디 씨가 틀렸고 제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결정한 대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 <클라라와 태양>


소설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AI가 유한한 한 사람의 특별함을 완전히 대체하는게 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질문을 제시하고 스스로 그 답변을 내린다. 한 인격체를 완벽히 모방하는게 기술적으로 구현이 가능한가? 그리고 실현이 된다 한들 그걸 완전한 대체라고 볼 수 있겠는가? 그에 대한 결론은 단호한 '아니오'다. 무수한 인연의 집합체로 이루어진 개인은 오로지 본인으로서 특별한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기억에 저장된 파편으로서 그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그 '본인'이란 것도 타인에 대한 경험으로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미약한 개인의 알량한 몸뚱아리가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억에서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한정되어 있기에 소중할 수 있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존재였다.


처음에는 아무런 대가 없이 좋아할 수 있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우선순위를 내가 아닌 타인으로 옮기며,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감정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감정(鑑定)은 변화하고 변화했다. 그리고 이제야 한 학기 내내 고심하고 탐색했던 교수님의 핵심 질문, “사랑이란 뭐라고 생각하냐”에 대응할 만한 근사한 답변이 <클라라와 태양>을 통해 머릿속에 번쩍였다.



사랑이란 인생이다.


모방을 통해 배우며 성숙해지는 일련의 과정이며 유한하다.



가족이 아닌 남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어본 적 없는 시절에는 청춘 드라마나 소설을 보고 저게 사랑이구나, 하며 그 감정을 흉내낼 뿐에 불과한 모방을 나를 똑같이 좋아해주지 않는 타인에게 대입해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내 첫사랑이 그러했다. 시행착오였을지라도, 그때의 내가 느꼈던 그 순진한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도 애틋한 그런 감정이었다.


그리고 첫 연애를 했다.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감정을 표출하며 그저 드라마 대사처럼 좋아한다는 표현을 무성의하게 남발하는 것이 사랑의 표현인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첫 실연을 당했고, 다음에 다가올 소중한 인연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다양한 인연들을 만나며 하나둘씩 배워갔다. 인연을 하나씩 마무리 짓게 되었을 때도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다. 그 인연을 통해 배움이 있었고 내 정신을 한결 성숙해지도록 바탕을 쌓았다는 데서 위안을 얻었다. 지금의 나를 이루는 것은 곧 인연의 파편이기 때문에, 한 인연이 단절되었어도 완전한 상실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클라라는 조시가 되기 위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학습하는 과정에서 그녀를 진심으로 아끼게 되었다. 인간을 배우기 위해 모방을 거치며 릭과 조시의 인연, 릭이 잘되기를 바라는 어머니 헬렌의 심정, 딸 조시를 잃지 않으려고 혈안이었던 어머니 크리시까지, 클라라는 단순한 에이에프 기계였지만 그 모든 사랑을 곁에서 배우며 인간의 사랑을 이해하고 결국에는 매니저에게 한 사람을 이루는 본질적인 특별함은 그 사람에게 내재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는 타인들의 마음 속에 있기에, 결코 본인이 조시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얘기한다. 유한한 인생이 지닌 특별함은 그 한순간의 가치를 공유했던 인연들의 삶 속에 저장되어 있다. 그러니 인생이 유한하다는 사실에 슬퍼하지 말자. 영원하지 않은 그 아름다움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자. <클라라와 태양>이 알려준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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